[밀물썰물] 호랑이 연고와 K의약품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호랑이 연고’는 싱가포르산 소염 연고이다. 호랑이가 몸을 길게 뻗고 달려가는 듯한 상표 그림이 인상적이다. 육신의 아픔이 호랑이 기세에 눌려 도망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호랑이 연고는 2011년 정식 수입이 이뤄졌지만, 1970년대부터 이미 국내에서 유통됐다. 처음엔 주로 동남아를 오가던 선원 등이 선물용으로 가져왔다. 이후 보따리상들이 가세해 부산 국제시장 등에서 팔렸다. 1990년대 동남아 패키지 관광이 본격화되자, 해외 여행의 귀국 선물로 자리를 잡았다. 현지에서 호랑이 연고 여러 개 구매해, 귀국 뒤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게 유행이었다. 벌레 물린 곳부터 근육통, 관절염까지 어디든 효과가 좋다는 말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물론 호랑이 연고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실제 약효와 상관없이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지금은 호랑이 연고의 인기가 꺾였지만, 일본산 의약품의 경우 귀국 선물용으로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70년대부터 ‘오타이산’, ‘와카모토’ 등 일본 소화제들은 다양한 경로로 들어와 유통됐다. 수년 전에도 한국인이 일본에서 양배추 성분으로 만든 소화제 ‘카베진’을 싹쓸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의 ‘동전파스’나 ‘발바닥 파스’ 등의 인기도 꾸준하다. 비슷한 국내 브랜드들도 출시됐지만, 여전히 일본에 가면 현지 의약품을 구매하는 수요가 많다.

국외 현지 의약품의 인기는 실제 약효나 가격 우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현지 의약품도 일종의 기념품 같은 성격이 있다. 여행을 가면 현지인처럼 먹고, 입고, 즐기려 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 음식과 놀이 등을 넘어 현지 삶을 이루는 일상적인 것들까지 호기심이 확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용품도 현지 삶을 간접 체험하는 아이템이 되고, 여행지를 기념하는 문화코드가 될 수 있다.

K푸드, K화장품 등에 이어 K의약품도 인기라고 한다. 올해 상반기 방한 외국인의 국내 약국 카드 이용액이 전년 대비 1177% 폭증했고, 부산에서도 외국인이 몰리는 곳에 대형 약국이 늘고 있다. 대한민국 의약품의 품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우리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세계인이 늘어난 게 이유다. 대한민국을 간접 체험하려 다양한 문화 코드를 소비하려는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가 더 올라, 의약품에 이어 우리 일상의 또 다른 무엇이 세계인의 소비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