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남발로 판·검·경 흔드는 법왜곡죄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매일 4명꼴로 판사 고소당해
통상적 소송지휘도 트집 잡아
종결된 사건 소급 고발까지
“사법 독립 훼손” 우려 확산

부산일보DB 부산일보DB

판사에 이어 검사와 경찰까지 이른바 ‘법왜곡죄’ 고소·고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재판 결과나 수사·기소 처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법조계에서는 “재판 독립을 뒤흔드는 ‘고소 권력’이 등장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법왜곡죄로 고소·고발당한 판사는 529명이다. 매일 평균 4명꼴로 판사가 고소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법관 외에 피고소인은 경찰 3535명, 검사 727명, 검찰수사관·특별사법경찰관 167명으로 집계됐다.

고소 사유 대부분은 재판부의 통상적인 소송지휘 행위를 문제 삼는 경우로, 법왜곡죄가 성립하려면 법을 고의로 왜곡 적용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하는데 실제 사례들은 이 요건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 따르면, 한 사건 당사자는 재판부가 쟁점을 명확히 하려고 석명을 요구하고 증거제출을 명령하자 이를 ‘재판 거래’라며 고소했다. 상해 혐의로 재판받던 한 피고인은 재판장이 법정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제지했다는 이유로 ‘진실 발견을 방해했다’며 고소하기도 했다. 고소인 한 명이 경찰관 등 800여 명을 한꺼번에 법왜곡죄로 고소한 사례까지 나왔다.

대법원은 법 도입 논의 단계부터 부작용을 우려해왔다. 대법원은 “왜곡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며 “법관의 소신 있는 재판에 법왜곡죄 혐의를 씌울 위험이 있고, 법관의 독립적인 사법권 행사를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검찰과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재임 중 구매한 의상 대금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로 지급됐다는 이른바 ‘옷값 의혹’을 고발했던 한 시민단체는 검찰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하자 담당 검사장과 부장검사를 법왜곡죄로 고발했다.

법왜곡죄 시행 전 벌어진 사건이 소급 고발된 경우도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박영재 대법관이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으나 결국 각하됐다.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민원인이 본인의 사건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까지 고소·고발하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피소된 경찰을 동료 경찰이 다시 수사해야 하는 구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판사 개인을 형사 입건하는 방식이 사법 정의 실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항소·상고 등 정상적인 불복 절차가 엄연히 있는데도 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판사를 형사 고소하는 것은 재판에 대한 불복을 사법 절차가 아닌 형사 절차로 우회하려는 시도”라며 “이런 관행이 굳어지면 판사들이 소신 있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왜곡죄는 지난 3월 12일 사법 권력의 남용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과 수사·기소를 담당하는 검사, 경찰 등이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과를 주려는 목적으로 법을 고의로 왜곡해 적용하거나 사실관계를 조작해 적용한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