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새로 짓는 아파트는 정부가 정한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준공 승인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정부의 고강도 대책에 대형 건설사들은 층간소음을 잡을 수 있는 신기술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지역의 중견·중소 업체는 고가의 완충재 등을 비용 측면에서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며 불안에 떨고 있다. 이 같은 조치가 그렇지 않아도 치솟는 분양가를 한층 더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층간소음 기준 49데시벨(dB) 이하를 충족하지 못한 신축 아파트는 준공 승인을 해주지 않기로 했다. 49dB은 조용한 사무실 수준의 소음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준공 승인이 나지 않으면 입주할 수 없고, 그에 따른 금융 비용은 건설사가 부담해야 한다. 공사 중간(준공 8~15개월 전)에도 층간소음을 측정할 계획이다. 지금은 전체 가구의 2%를 대상으로 층간소음을 검사했지만, 표본을 5%로 늘린다.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이 같은 고강도 대책에 건설업계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현대건설은 ‘층간소음 제로’를 목표로 소음·진동 해결을 위한 통합 솔루션인 ‘H 사일런트 솔루션 패키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패키지는 바닥시스템과 평면구조, 저주파·진동 제어 기술, 소음 감지 알고리즘 등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4종 시스템을 집약했다. 현대건설은 우선 바닥 시스템인 ‘H사일런트 홈’을 내년부터 실제 현장에 적용한 뒤 점차 대상 단지를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업계 최초로 층간소음 전문 연구소인 ‘래미안 고요안 랩(LAB)’을 열고 층간소음 기술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이미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 등급 평가에서 경·중량 충격음 모두 1등급 인증을 받아 놓고, 고도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단계다. 삼성물산은 R&D를 통해 바닥재 성분과 구조, 신공법은 물론,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다양한 원인과 현황을 분석하며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시할 계획이다.
GS건설은 용인기술연구소에 친환경건축연구팀을 두고 층간소음 방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층간소음 1등급’을 받은 4중 바닥구조를 개발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콘크리트 슬래브 위 바닥마감 두께를 기존 110∼120mm에서 140mm 수준으로 늘리고, 고탄성 완충재를 적용해 한층 더 층간소음을 줄인 5중 바닥구조를 개발했다. 아울러 충격 진동을 줄이는 ‘방진마운트 바닥구조’ 특허 등록도 마쳤다. 성능 개선작업을 거쳐 공인인정서를 받은 뒤 순차적으로 신축 아파트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스마트 3중 바닥구조’를 자체 개발했다. 내력강화 콘크리트와 고탄성 완충재, 강화 모르타르 등을 적용한 새로운 기술로 층간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 바닥구조는 시공 후 양생까지 최소 3일이 소요되는 기포 콘크리트 공정을 생략할 수 있어 공기가 3일 이상 단축되고 습식공사를 건식공사로 변경함으로써 시공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1군 건설사들 위주로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지역 건설사들은 규제 강화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형 건설사에 비해 R&D에 투입할 자본력이 부족한데,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으로 유동성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대기업에 비해 자체 기술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은 고가의 완충재를 구매해야 한다”며 “아무리 원가를 줄이더라도 기존 완충재에 비해 고성능 완충재는 몇 배씩 비쌀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지역 건설사 관계자는 “1군 건설사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기준을 그대로 갖다대면 지역 업체들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것”이라며 “층간소음은 굉장히 예민한 사안이라 조금만 실수를 해도 기준을 초과할 수 있다. 명단이 공개되면 그렇지 않아도 외면당하는 지역 브랜드들이 사실상 수주를 못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규제 강화가 분양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슬래브 두께(현 210mm)를 높이거나 신기술을 적용하면 현행보다 공사비가 적어도 5%는 더 오를 것이라고 본다. 철근 콘크리트, 형틀 등의 사용 물량이 늘어 공사비가 더 많이 오를 수도 있다.
원자재값 뿐만 아니라 시공 과정에서 비용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밀시공을 위해서는 현장 작업자에 대한 관리를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하기에 시공 관리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자재도 중요하지만 자재를 능숙히 다룰 수 있는 숙련공도 있어야 한다. 비용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책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체 가구의 5%를 뽑아서 하는 샘플조사만으로는 층간소음을 제대로 검사할 수 없다”며 “건설현장 작업자의 숙련도나 시공사의 품질 관리에 따라 층간소음 차단 여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샘플 20% 조사에서 시작해 전수조사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층간소음 기준에 미달했을 때 사후 보강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축 아파트 관리를 강화해도 구축 아파트의 층간소음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앞서 정부는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 대해선 소음 저감 매트 시공 비용을 최대 300만 원까지 저리로 빌려주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국토부는 올해 5000가구가 융자를 받아 소음 저감 매트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 150억 원을 편성해뒀으나, 자기 돈을 들여야 하는 탓에 호응이 극히 낮았다. 올해 21가구를 지원한 데 그쳤다.
하지만 실수요자 입장에서 정책의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일부 비용 증가가 있더라도 층간소음 기준이 지켜지는 편이 소비자에게는 더 이익이 될 것”이라며 “종전보다 층간소음에 대한 기준이 점차 강화되는 점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