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 기대감과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힘입어 가계대출이 연일 빠른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은행의 가계대출은 올해 상반기 20조 원 넘게 늘어났는데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5배나 빠른 증가세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인 가계대출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21일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20조 5000억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4조 1000억 원)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가계대출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은 26조 5000억 원 늘어났는데, 이는 2021년 상반기(30조 4000억 원)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주택 거래 증가와 대출금리 하락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정부가 디딤돌·버팀목 대출 및 신생아 특례대출 조건을 완화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대출이 급증한 것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올해 1~5월 서울에서 9억 원 이상 아파트의 거래량은 9870건으로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경우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회복 추세에 접어들고 있다.
또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 것과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부의 정책자금이 대규모 공급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같은 주담대 증가세가 하반기에도 가파르게 이어질 전망이라는 점이다. 지난 18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이미 3조 6000억 원을 훌쩍 넘은 상태다. 특히 한국은행이 이르면 9월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가계대출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은행에 대해서는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관리에 나섰다. 또 9월로 예정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고 했다. DSR은 연간 소득과 원리금 상환액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규제로, 스트레스 DSR은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대해 “시장 상황을 보면서 추가적인 조치가 있는지 등을 들여다보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은행들은 최근 가계대출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거나 인상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오는 24일부터 아파트 담보대출 중 5년 변동금리 상품의 대출 금리를 0.20%포인트(P)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영업점에 송부했다. 아파트 외 주택담보대출 중 5년 변동금리 상품의 대출 금리는 0.15%P 인상한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 12일에도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각각 소폭 인상한 바 있다. 불과 2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금리 조정에 나선 것이다.
하나은행은 이미 지난 1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대 0.2%P 인상했다. KB국민은행도 이달 3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13%P, 11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2%P 높였고, 신한은행 역시 15일 금융채 5년물 금리를 기준으로 하는 모든 대출 상품 금리를 0.05%P 인상한 바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금융감독원도 지난 15일부터 은행권 대출 실태 점검에 나섰다. 특히 이달 3일에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논의하기 위해 부행장 간담회를 소집해 은행권을 압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