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올해 빈집 특례법에 따라 두 번째 실태 조사를 벌인다. 하지만 실제 빈집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무허가 주택이 조사 대상에 빠져 있어 현실과 괴리가 크다. 통계청은 부산시 빈집 통계보다 20배가 많은 수치를 사용한다. 지역 인구 소멸로 빈집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지만(부산일보 9월 1일 자 1면 보도) 정부와 부산시는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어떠한 빈집 대책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빈집 대책 첫 단계부터 혼선을 빚는 사이 위기 대응의 골든 타임이 지금도 재깍재깍 흘러가고 있다.
■무허가 ‘쏙’ 빠져 부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빈집 특례법(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시행했다. 빈집 문제에 대한 정부의 첫 조치다. 법은 시도가 빈집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빈집 정비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2019~2020년 빈집 실태 조사를 처음으로 진행했다. 2022년에는 법이 개정되며 빈집 실태 조사와 정비 계획 수립이 5년마다 의무화됐다. 빈집 실태 조사는 국토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이 부산시 등 지자체의 용역을 받아 모두 맡는다.
부산 서구와 동구, 영도구는 빈집 특례법과 무관하게 매년 자체 빈집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구는 2007년, 동구는 2020년, 영도구는 2019년 조사를 시작했다. 정부와 부산시의 조사보다 빨랐던 이유는 원도심의 빈집 문제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들 원도심 3개 지자체가 파악한 빈집은 총 3557채이다. 반면 부산시는 이들 지역에 1173채의 빈집이 있다고 했다. 두 통계는 조사 대상에 무허가 주택이 포함했는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시는 국토부의 빈집 특례법이 빈집 정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빈집 정비 사업이 가능한 허가 주택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3개 지자체는 무허가 주택도 조사 대상에 포함한다. 서구 관계자는 “부산 원도심의 역사적, 지형적 특성상 무허가 빈집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법상 무허가 주택을 조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조사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국토부는 빈집 기준을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는 주택’으로 두고, 전기와 수도 사용량이 없으면 현장 확인 거쳐 빈집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들 3개 지자체는 각 동주민센터를 통해 통장들이 직접 빈집 실태를 조사한다. 한 통장은 “관리하고 있는 지역에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전기, 수도 사용량은 물론 평소 거주 여부를 확인해 종합적으로 빈집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원도심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가 빈집으로 분류한 집이 부산시와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는 빈집으로 분류돼 있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귀띔했다.
■‘20배’ 통계청 통계도 혼용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발표한 2020년 기준 부산의 빈집 수는 11만 3410채다. 부산시가 발표한 빈집 수의 20배가 넘는다.
통계청 빈집 조사는 주민등록, 건축물 대장 등 행정 정보를 활용한 조사 방식과 표본(20%) 현장 조사 방식을 취한다. 조사 기준일(11월 1일)로부터 일정 기간 전기, 수도 계량기가 작동하지 않는 집을 빈집으로 분류한다.
가장 큰 특징은 표본 조사를 통해 전체 빈집 수를 추정하는 방식이라는 점과 미분양 주택과 공공임대주택, 수리 등 일시적으로 비어 있는 집도 포함한다는 점이다. 행정 정보를 활용하다 보니 무허가 주택도 사실상 배제된다.
통계청의 부산 빈집 수 11만 3410채는 3개월 미만, 3~6개월, 6~12개월, 1년 이상 등 비어 있는 기간별 빈집을 모두 합한 수치다. 통계청의 부산 빈집 통계에서 1년 이상 빈집은 2만 2120채였는데, 이 역시 부산시 통계보다 4배 정도 많다.
문제는 통계청의 빈집 통계가 정부의 관련 자료나 각종 대책 토론회 등 실태 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부와 부산시, 통계청, 일선 지자체의 서로 다른 빈집 통계는 빈집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울러 서로 다른 빈집 조사 결과를 두고 대책을 논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빈집 특례법에 따라 5년마다 실시하는 빈집 실태 조사에 최근 착수했다. 내년 2월까지 구군별로 한국부동산원이 용역을 맡아 조사를 벌인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허가 주택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는 건축물 대장은 없지만 주택분 과세가 이뤄지는 일부 무허가 주택은 포함하기로 했다”며 “전체 무허가 빈집 조사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실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원도심 산복도로 협의체(동·중·서·영도·부산진구) 김진홍(동구청장) 위원장은 “노후도와 위험도가 심각하고 빈집의 전염성이 높은 무허가 주택을 포함하지 않은 빈집 실태 조사는 빈집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며 “무허가를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정확한 실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의 빈집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빈집 조사는 5년마다 긴 주기로 진행된다”며 “빈집 문제가 심각한 지자체라도 먼저 정확한 실태 조사와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정부와 부산시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이대성·김준현·손혜림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