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유명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 오페라 연출가 엄숙정의 손을 거쳐 ‘모던’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온다. 금정문화회관은 ‘2024 부산오페라시즌’을 맞아 오는 11일과 12일 오후 7시 30분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에서 콘서트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공연한다.
■19세기 배경이 현대로 변경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작곡된 시골 농장의 전원극 같은 작품이 현대의 디자인 하우스로 시공간을 바꾼다. 역할 변화도 불가피하다. 농장 지주의 딸 아디나(소프라노 홍혜란·박하나)는 유명 수석 디자이너로, 시골 농부 네모리노(테너 최원휘·도영기)는 빌딩 청소부로 바뀌었다. 네모리노의 숙적 벨코레(바리톤 이동환·김종표) 장교는 사설 경호업체 대표, 허풍쟁이 엉터리 약장수 둘카마라(베이스 김대영)는 유능한 판매원이 되어 아디나의 디자인 하우스를 찾는다. 둘카마라에겐 두 명의 조수가 생겼다. 원작의 잔네타(소프라노 곽유정)는 세컨드 디자이너이다.
시공간을 바꾼 이유는 뭘까. 엄 연출가는 “‘사랑의 묘약’은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캐스팅이 너무나 훌륭해서 좀 더 모던한 작품으로 바꿔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오페라합창단 32명의 각각 다른 의상도 살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주·조역이 입을 의상은 별도 제작했지만, 합창단 의상은 경성대 패션디자인학과 협업으로 완성했다. 32명의 학생들이 합창단원 1명씩 맡아 제작했다.
엄 연출가는 “네모리노의 구애가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열망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어떤 마법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낼지 기대할 만하다”면서도 “둘카마라가 사랑의 묘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할지,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믿음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지 작품을 통해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홍혜란·최원휘 부부 성악가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시공간 외 주목할 부분은 두드러진 출연진이다. 우선 첫날 출연하는 정상급 성악가 소프라노 홍혜란(43)과 테너 최원휘(44) 부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지난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인 ‘라 트라비아타’에서 국내에선 처음 남녀 주인공으로 함께 출연했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홍혜란은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분 아시아계 최초 우승자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전임교수와 국내외 유명 오페라극장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이다. 최원휘는 2020년 미국 메트로폴리탄(이하 메트)에서 ‘라 트라비아타’ 알프레도 역으로 주역 데뷔한 후 2024-25시즌 애틀랜타 오페라 ‘맥베스’, 호주 빅토리안 오페라 ‘론디네’, 하와이 오페라 ‘카르멘’ 등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요 극장에 서고 있다.
“부부가 한 무대에 서면 책임감이 더 생깁니다. (작품이) 더 잘 됐으면 하는 거죠!”(홍혜란) “성악가들은 작품에서 매번 새롭게 합을 맞추는데, 저희는 삶 속에서 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최원휘)
홍혜란은 아디나를 여러 번 했지만, 최원휘는 네모리노가 처음이어서 부담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메트에서 첫 해 네모리노 커버 캐스팅을 맡아서 이미 공부해 놓은 건 있다. 네모리노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순수한 사랑을 믿는 몇 안 되는 캐릭터여서,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금정 오페라만 세 번 출연하는데 이 정도면 ‘금정의 아들’ 아닌가요?”라며 웃었다.
홍혜란도 모던하게 바뀐 아디나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금정의 시도가 성악가로서도 기대된다. 이전 오페라와 달리 일상 연기를 하다 보니 이질감이 줄어서 오페라 내용이나 가사에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원휘 역시 “내용적인 면에서 큰 틀을 바꾼 건 아니어서 적응하기 편했고, 관객 소통이란 면에서도 한결 이해하기 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의환향’ 테너 도영기 부산 데뷔
둘째 날의 출연진도 어느 해보다 화려하다. 현재 부산에 거주하거나 부산 출신의 성악가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서울대 음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신시내티에서 석·박사를 마친 박하나 부산대 교수를 비롯해, 부산대를 졸업하고 ‘세계 오페라를 빛내는 한국의 젊은 성악가 75인’(2020년 <객석>)에 든 독일 카셀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5년) 출신의 테너 도영기, 경성대와 한예종을 졸업한 뒤 100여 회의 주·조역 등 현재 오페라 전문가수로 활동 중인 바리톤 김종표, 부산예고와 부산대를 거쳐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스튜디오 1기를 수료한 소프라노 곽유정 등이 출연한다.
부산 무대에 데뷔하는 테너 도영기는 “반가우면서도 떨리고, 설렌다”며 “오히려 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그는 또 ”작품을 준비하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향 부산에서의 공연이라 흔쾌히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도영기의 이번 무대는 현재 부산대 모교 강단에 서는 박 교수와 동반 출연이란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2007학번의 도영기는 박 교수한테 직접 배우진 않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고향에 왔는데 모교 교수님과 연인 역할로 출연하게 돼 재밌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고 전했다. 도영기 역시 네모리노는 첫 출연이다. 부산 공연을 마친 뒤에는 오는 11월 이탈리아 페라라 시립극장에서 올리는 ‘마술피리’의 타미노 역을 맡기로 했다.
한편 엄 연출가는 첫째 날과 둘째 날 출연진 특성을 묻는 질문에 “첫째 날 팀이 굉장히 순발력이 있고 호흡도 빠르고 리듬감과 액센트가 살아 있다면, 둘째 날은 조금 더 서정적이면서 전통적인 라인이 살아 있어 음악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지휘 김광현, 연출 엄숙정, 오페라 코치 김정운, 연주 2024시즌 부산오페라하우스 합창단·오케스트라. 관람료 R석 5만 원, S석 4만 원, A석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