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핫플레이스 방문 대신 한강 작가 책을 읽기로 했어요.” 이지율(26) 씨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주말 계획을 바꿨다. 이 씨는 “노벨상 수상작을 원문으로 읽는 감격을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됐다”며 “(한강 작가)책을 구할 수 없어 고생했는데 마침 친구에게 책을 빌릴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지난 10일 한강이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SNS에 축하 글을 올리고, 한강 소설 품귀 현상이 나타나는 등 부산에도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
13일 오후 2시 부산진구 서면 영광도서. 서점 한 켠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문구와 함께 한강 책 예약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부산 해운대구 영풍문고에서도 한강이 쓴 6종류의 소설과 시가 모두 품절이었다. 영광도서 점원 전수빈(24) 씨는 “발표 다음 날 서점 문을 연 지 10분 만에 한강 작가 책이 다 나가서 물량이 아예 없다”며 “평소 어르신이 많이 찾는 서점인데 이렇게 오픈런을 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극심한 침체에 빠진 국내 도서 시장에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한강의 책이 30만 부가량 팔리며 서점가 재고 물량은 바닥났다. 예스24에 따르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노벨상 수상 전일 대비해 판매량이 7500배나 증가했다. 〈소년이 온다〉는 1845배, 〈채식주의자〉는 1578배에 이른다.
서점 인터넷 홈페이지 ‘베스트셀러’도 한강의 작품으로 도배됐다. 대부분 온라인 서점은 ‘15~16일 이후 배송 예정’이라는 일정을 공지하고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시간이 흐르면 판매량이 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오히려 늘고 있다. 이처럼 빨리 판매량이 증가하는 상황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책 품귀 현상에 당근마켓과 중고나라 등에는 한강 작가의 책을 판다는 사람들과 구한다는 사람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양장으로 된 특별한정판 〈소년이 온다〉를 20만 원에 판다는 게시물에 6건의 구매 문의 채팅이 오기도 했다.
한강의 작품뿐 아니라 독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반응도 찾아볼 수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독서를 ‘힙하게’ 여기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가 맞물려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김정연(26) 씨는 “한강 작가 인터뷰를 봤는데 표현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차분해 감명받았다”며 “책을 많이 읽고 한강 작가 같은 사람이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성인 독서율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독서율은 43.0%를 기록했다. 종합독서율은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1994년 실태조사(격년) 실시 이래 가장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