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에 서울 홍대처럼 셀프 사진관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지난달 31일 오후 2시께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관광객의 반응이었다.
실제 해안가 약 1.4km에 걸친 상가 거리에 즉석 셀프 사진관만 13곳이 있었다. 해변을 따라 셀프 사진관이 100m마다 한 곳씩 있는 셈이다. 요즘 유행하는 오락실도 4곳이나 있었다. 상호가 ‘오락실’이긴 하지만, 가게 내부엔 ‘인형 뽑기’ 기계가 대부분이었다. 오락실 내부에는 귓가를 때리는 댄스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고 조명이 현란했다. 34년간 영업하다 문을 닫은 식당 ‘게스후’ 자리에도 조만간 전국에 수십 개의 지점을 가진 대형 프랜차이즈 오락실이 들어선다. 이 오락실과 인근 호텔 1층에 입점한 맥줏집이 월세 5000만 원 정도로 광안리 일대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해안가 일대 상가가 임대료 폭등으로 공실이 발생하며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는 즉석 셀프 사진관,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 대형 오락실 등이 빠르게 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다간 무인점포나 대형 가맹점만 남아 전체 상권에도 악영향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안리 일대는 바다 조망이 가능하고 행사도 연중 이어져 과거 횟집, 고깃집, 카페, 호텔 등 다양한 형태의 자영업이 성업한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성 있는 가게는 사라지고, 무인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무인점포는 인건비가 들지 않아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을 타고 있다.
이들 가게는 20~30대 젊은 층을 위한 공간이지만 오래 머무는 곳은 아니다. 게다가 유행에 민감하다 보니 언제든 폐업할 가능성도 크다.
부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 광안리가 잘 나가지만 임대료가 과도하게 오르면 어느 시점엔 권리금조차 회수 못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태원 사례처럼 공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이 ‘광안리도 이제 죽었네’라고 판단하며 상권이 침체기에 들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임대료 상승이 공실 급증으로 이어진 사례가 널렸다. 실제 ‘○리단길’ 원조 격인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은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지역이다. 2010년대 중반 트렌드를 이끌며 상권 호황을 누렸지만, 점차 임대료가 높아지자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 등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이 모두 떠났다. 2019년 경리단길은 공실률 26.5%로 서울 1위 불명예도 기록했다. 상권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경리단길이 잘 나가던 2010년대에는 10평짜리 상가 월세가 600만 원을 넘기도 했는데, 결국 많은 자영업자가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며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저녁엔 술집을 가는 상권 사이클이 이뤄져야 하는데, 식당이나 카페가 많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한때 임대료 폭등으로 상권이 죽었다가 임대료를 파격적으로 낮춰 다시 활력을 찾은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경우 폭등하는 임대료 탓에 2010년 이후 긴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상가를 1년씩 비워 두는 것보다 합리적인 월세로 상권을 살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임대인들이 뜻을 모았다. 2017년부터 임대료를 낮춰 주는 착한 임대료 운동으로 당시 1층 1500만 원 수준이던 월세를 절반으로 낮췄다. 이에 압구정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2019년 1분기 6.7%서 지난해 0%를 기록했다.
홍준성 동의대 교수(부동산학 박사)는 “코로나19 시절부터 임대료 상승으로 온천천 카페거리, 해리단길, 전포동 카페거리에 공실률이 늘어나고 있다”며 “결국 상권이 황폐화하면 재산권에 피해가 간다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임대인들도 무분별한 임대료 상승에 대해 고민해야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