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인들은 마음에 안 드는 식물을 잡초라 부른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풀들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목적을 갖고 나왔다. 쓸모없는 풀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이 말은 체로키족의 잠언이었다. 지프(Jeep)의 대표 브랜드로 알려진 체로키(Cherokee)는 북미 원주민 중 가장 큰 민족이었다.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북미 원주민은 미국 땅에만 570개가 넘는 다양한 부족이 살고 있었다. ‘인디언’은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 땅에서 처음 만난 원주민을 인도 사람이라고 오해해서 생긴 말이었다.
부산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교류기획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순회전시의 일환으로 부산박물관에서 서울에 이어 국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미국 내 북미 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한 최초의 박물관인 미국 덴버박물관 공동 기획으로 북미 원주민의 공예, 회화, 사진 등 150여 점이 출품됐다.
1부는 40여 부족의 다채로운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하늘과 땅에 감사한 사람들’이다. 전시물 가운데 말에 매거나 수직으로 세워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요람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어린아이들이 일찍부터 몸으로 자연을 보고 느끼고 배우도록 한 것이다. 이로쿼이족 사이에서는 ‘대지 위를 걸어갈 때,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얼굴을 밟고 걸어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여성을 담은 사진에서 그들과 우리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오래된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2부는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사람들’로 북미 원주민이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과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된 갈등과 삶의 변화를 소개한다. 이주민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북미 원주민의 모습과 미국이라는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원주민이 겪은 갈등과 위기를 회화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서부 영화의 우상이었던 존 웨인은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존 웨인에게 클링깃족의 의식용 가면과 함께 그가 했던 말을 조합해 돌려주는 작품은 통렬하다. 앤디 워홀이 북미 원주민 운동가이자 영화배우인 러셀 민스를 그린 작품 앞에서는 세속적인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강렬한 작품은 역시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은 프리츠 숄더의 ‘인디언의 힘’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 흑인 육상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은 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리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미타쿠예 오야신! 이 낯선 단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의 북미 원주민 인사말로 출구 쪽 벽에 붙어 있다.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담은 말이다.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들과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공감해 보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크게 공감하는 오마하족의 잠언 하나만 더 소개한다. ‘맑은 하늘은 어여쁘다. 푸른 풀은 어여쁘다. 하지만 더 어여쁜 것은 사람들 사이의 평화다.’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