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배너
배너

[편집국에서] '별다방'과 '멸공커피'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페이스북
트위터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펼쳐 본다. 2024년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2년 연속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5월 광주의 아픔에 눈물 흘리며 공감했던가. 그런데 올 5월, 국내 대기업이 최대 주주인 한 커피 프랜차이즈가 말도 안 되는 판촉 행사를 벌여 공분을 샀다. 바로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18일 선보인 ‘탱크데이’ 텀블러 프로모션이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해당 이벤트 게시물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문제의 마케팅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명백한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가 된 인물, 고 문재학 열사의 누나 문미영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탱크’라는 용어를 듣는 순간 정말 소름이 돋았다”며 “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탱크와 군홧발로 얼마나 많은 광주 시민과 학생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실무 직원의 단순한 일탈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조직 내부 의사 결정과 정책 집행 과정, 최고경영자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았다.

그동안 ‘별다방’이라는 친근한 별칭을 얻으며 사랑받던 스타벅스는 순식간에 ‘멸공커피’로 전락하며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과거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멸공’과 관련한 발언을 하며 수차례 논란을 일으켰던 게 브랜드 이미지를 타격했다. 소비자들은 스타벅스 머그컵과 텀블러를 파손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며 불매운동 동참을 선언했다. 경조사 답례품으로 인기를 끌었던 스타벅스 모바일 쿠폰을 환불받는 법을 공유하거나 스타벅스 앱을 삭제했다며 ‘탈벅(탈스타벅스)’ 인증을 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충전 금액의 60% 이상을 사용해야만 잔액을 환불받을 수 있는 선불카드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스타벅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교환권 전체 인기 순위에서 7년간 지켜온 1위 자리를 24일 배달의민족에 내주고 말았다. 불매 움직임은 신세계그룹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일부 소비자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탈팡(탈쿠팡)’해 이마트를 이용해 왔는데, 이제 그마저도 끊어야 할 판이라고 토로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스타벅스 본사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이어질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앞서 2021년 이마트는 스타벅스 본사가 보유한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계약에는 이마트의 귀책 사유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될 경우 스타벅스 본사가 35% 할인된 가격으로 관련 지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정용진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시민단체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고발까지 당한 상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과 모욕, 명예훼손 등의 혐의다. 서울경찰청이 맡은 두 건의 고발은 연휴 중에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극우 세력은 스타벅스를 옹호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SNS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스타벅스 탱크 텀블러를 들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과 스타벅스 머그컵을 든 전 대통령의 포스터 등이 퍼지고 있다.

2019년 무신사 ‘고문치사 카피’ 사태도 재조명됐다. 무신사는 당시 양말의 빠른 건조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속건성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사용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무신사는 지난 20일 재차 사과문을 내고 “7년 전의 뼈아픈 과오는 무신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엄중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며 “앞으로도 올바른 역사 인식과 책임 있는 자세로 고객 여러분을 마주하겠다”고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용진 회장도 지난 19일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했다”며 서면으로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사그라들지 않는 비판 여론을 보면 대중은 이런 사과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스타벅스가 극우의 상징 ‘멸공커피’로 남을지, ‘별다방’으로 불렸던 예전의 친근한 이미지를 되찾을지는 향후 대응에 달렸다. 진심 어린 사과와 진상 조사,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관련기사

라이브리 댓글

닥터 Q

부산일보가 선정한 건강상담사

부산성모안과병원

썸네일 더보기

톡한방

부산일보가 선정한 디지털 한방병원

태흥당한의원

썸네일 더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