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형제들] 15번째 증언 "자물쇠 '철커덩'…왜 밖에서 문을 잠그지?"

동기 권유로 형제복지원 야학교사 활동
"맞아 죽기도 해요" 아이들 고백
밖에서 채운 자물쇠, 식사 등 '비정상'
'제자들' 취직 등 도왔지만 적응 못해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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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1987년 봄, 부산 사상구 주례동 백양산 자락. 육중한 담장 너머로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12년 동안 공식 사망자만 513명. 이후 33년이 지나서야 올해 5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부산일보>는 '살아남은 형제들-형제복지원 절규의 증언' 영상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자들 기억 속 진실의 조각을 맞춰보려 한다. 33인의 목소리가 모여 33년 전 '한국판 아우슈비츠'의 실체를 밝히는 한 걸음, 수만 명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길...('살아남은 형제들'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


<간추린 이야기>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 검정고시를 칠 수 있게 도와준다('검정야학')는 친구의 말에 당시 동아대 대학생이던 엄경흠 교수(신라대 국어교육과)는 선뜻 야학교사 봉사활동에 동참했다.

1983년 봄부터 1985년 말까지.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엄 교수가 받은 인상은 '정상적인 기관이 아니다'는 거였다.

하루는 검정고시를 앞두고 모자란 공부를 더 가르쳐주기 위해 아이들과 내무반에서 함께 잠을 잤다. 그런데 밖에서 '철커덩' 문을 걸어잠그는 게 아닌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감옥도 아닌데, 바깥에서 문을 잠그는 이유를 엄 교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간혹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기도 했는데, 그런 고역이 또 없었다. 군대 짬밥보다는 심하고, 음식물 쓰레기보단 덜한 '고약한 냄새'가 식당 전체에 진동을 했다.

야학 여교사들은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갔지만, 엄 교수는 아이들 눈치가 보여 꾸역꾸역 먹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장면은 '노동'이다. 오후 5시께, 수업을 위해 형제복지원 안으로 들어서면 여든 노인부터 십대 아이까지, '돌 깨기' 같은 일을 늘 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말 한마디 없던 아이들도 방에선 달랐다. "많이 맞는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얘길 대놓고 했다. 하지만 야학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개중에는 집 주소를 아는 아이들도 있었다. 야학 동료들과 함께 아이들 집을 찾아나섰지만 대부분 이사를 간 뒤였다. 지금처럼 번듯한 집이 많지 않던 시절, 월세방을 전전하며 이사를 다니는 가정이 많았다. 간혹 집을 찾았지만 "어차피 데려다 놓으면 다시 집을 나간다"며 부모가 거부하기도 했다.

1985년 말 갑자기 야학이 사라졌다.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그러고 얼마 뒤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외부에 알려졌다.

과연 원생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을 때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엄 교수를 비롯한 야학 교사들은 걱정이 앞섰다.

엄 교수는 당시 야학 교사들 중에 유일하게 집 전화가 있어서 "사회에 나오면 연락하라"며 번호를 알려줬다. 몇몇은 실제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면 동료들과 함께 만나 밥도 사먹이고,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엄 교수는 한 아이에게 방을 얻어주고 취직도 시켜줬다. 그런데 두어 달 만에 사라졌고, 얼마 뒤 부산구치소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길거리에서 신문 파는 사람을 보고, 가판대 신문을 집어 팔다가 붙잡혔다고 했다. 가판대 물건을 돈 주고 사야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이들이었다.

또 다른 '제자'는 엄 교수와 만난 자리에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 길 가다가 호주머니 조심하세요. 우리 눈에는 다 보입니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인데 설마 나쁜 짓 하겠냐"며 농담으로 얼버무렸지만, 가슴이 아팠다.

엄 교수는 형제복지원 출신 아이들이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지기관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정부 보조금을 노리고 운영되는 복지기관이 존재하는 한 형제복지원 사태는 해결된 게 아니라는 엄 교수. "진정한 복지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주는 거잖아요. 원하지 않는 걸 해주는 게 무슨 복지입니까?"

'부랑인 교화'란 미명 아래 수만 명을 잡아들여 사회와 격리시킨 시설. 형제복지원을 '복지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교무실. 교지 <바램>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교무실. 교지 <바램>

<더 많은 이야기>

■ "비행기 만들어 탈출할 거예요"

83년도 3월인가요. 대학 동기예요 그 친구가 (형제복지원에서 야학을) 해보겠느냐 그래서. '학생들 검정고시를 보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고 하니 "좋다. 도움이 된다면 나도 도움을 주고 싶다." 그래서 같이 시작을 하고...

현직 교사, 기업체에 다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주로 (교사를) 했던 것은 부산대학교 학생과 동아대학교 학생들입니다.

'노동야학'을 할 것이냐 '검정야학'을 할 것이냐를 가지고 야학을 하면 서로 다투게 되거든요. 형제복지원 안에서도 우리는 '검야(검정야학)'를 지향을 할 수밖에 없었죠. 검정고시를 얼마나 합격시키느냐 하는 게 우리 목표였습니다.

교무실에 따로 있었습니다. 등사기 가지고 애들 시험지도 만들어주고 그랬거든요. 우리에 대한 자유는 그렇게 구속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국어하고 한자를 주로 했는데. 나중에 영어 선생을 할 사람이 없어가지고 제가 영어도 가르쳤죠.

개교를 아마 84년도로 그래 잡았을 겁니다. 박인근 이사장도 그때 당시에 글을 써놓은 것도 있지요.

한 50명 정도... (원생) 모두가 다 와서 수업을 받았던 건 아니지요.

"방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여기 와서 친구들하고 얼굴 보고, 선생님 얼굴 보고 그게 훨씬 더 자유롭고, 그러니까 여기 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사회성이 사실 결여가 돼 있으니까. 하는 행동도 조금 다르죠. 우리 수업 시간에 방귀를 한번 뀌잖아요. 미안해하고 깔깔깔 웃고 이럴 텐데... 조용~해요.

그런데 방에 들어가면 달라요. 자면서 애들한테 마무리 공부를 시켜주는... 그런 식으로 이제 들어가서 잘 때가 있었어요.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죠. 진짜 '애들'입니다. 하는 소리가 뭐냐면...

"선생님! 비행기 만들어 가지고요, 여기서 비행기 타고 나갈 수도 있어요." 이러는 거예요. 야 요놈 봐라?

"그래 좋다. 그럼 비행기 만들어서 한번 날아가 봐" 이랬더니 "예 그렇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래요.

"그래? 나가서 사회생활 하고 부모도 만나고 친구들도 사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그런 부분은 정말로 내가 바라는 바다..."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개교 입학식. 교지 <바램>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개교 입학식. 교지 <바램>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교지 <바램> 창간호 표지. 형제복지원 야간중학교 교지 <바램> 창간호 표지.

■ "그 밥, 다시 먹으라면 자신 없어요"

"우리 많이 맞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밖에선) '사랑의 매'라고 그러잖아요. 여기서는 많이 맞아요." 이래요.

"너희들이 항의를 못 하냐?" 그랬더니 "항의는 안 됩니다."

"죽기도 해요." 뭐 그런 이야기를 해요. "사람이 죽는 거 너희들이 봤냐?" 그러니까 "어쨌든 사람이 죽는다는 소문이 계속 나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 대놓고 죽이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상당히 폐쇄적이다'라는 건 알겠어요. 옷도 똑같은 걸 입고 있잖습니까. 이게 감옥이지...

탈출 하려고 하면 기본 조건이 있습니다. 뭔고 하니까 '형제복지원'이라고 등에 새겨져 있는 그 옷을 벗어야...

일반 사회 사람들은 형제복지원이 뭐하는 덴지 정확히 모르니까. 마치 감옥에서 탈출한 사람처럼 취급을 해버릴 거란 말이죠. 그러니깐 옷을 반드시 벗어던져야 된다라는...

들어가면 늘 하는 게 있어요. 좀 어린 애들부터 한 80 거의 노인까지... 앉아가지고 돌 깨고 있어요. 계속 노동을 시키는 겁니다.

글쎄 저 사람들이 저기서 왜 노동을 해야 되느냐. 좀 대단히 의아했었죠.

적금을 들어준다 그러네요. 사회적응을 할 수 있는 금액이겠죠.

근데 이 친구(원생)가 하는 말이 그래요. 300만 원인가 받아 나왔는데 지가 한 20년 있었대요 거기. 그거밖에 안 된다고 되게 울분을 토하더라고요.

임금착취고 노동착취다 라는 생각은 했었죠.

즈그들한테 들어오는 피복비라든지 음식물비가 있는데. 그게 하루에 1900원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라면이 250원 할 때 아닙니까.

그게 매일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게 집단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는 거겠죠.

이 돈으로 밥을 해서 먹였는데 밥이 이러냐 생각해 보면, 참 기가 막힐 노릇인 거죠.

야학 여자 교사들은 식당에 들어서면서 우웩 하고 토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굉장히 속이 안 좋았어요. 근데 애들 앞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같이 먹긴 먹었지요.

썩어 빠졌어. 톡 깨놓고 얘기하면. 우리 왜 '방출미' 있잖아요. 군대 짬밥 냄새가 좀 고약하잖아요. 약간 상한 쌀로 해놓은 밥 냄새. 그게 식당 안을 잔뜩 채웠으니...

"토요일날을 굉장히 기다리거든요." 그래요. "토요일날 뭐 특별하냐?" "자장면 주거든요." 자장면은 그런대로 먹을 만 하대요.

탈루가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복지를 지향할 수 있는 그런 기관일까. 그런 데 대한 의심은 뭐... 야학을 같이 하던 친구들이 전부 다 느끼는 바였어요.

거기서 다시 밥 먹으라고 하면... 솔직하게 자신 없습니다.

돌 깨기 작업을 하고 있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돌 깨기 작업을 하고 있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돌 깨기 작업을 하고 있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돌 깨기 작업을 하고 있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우리 좀 나가게 해주세요"

(원생들이) 나가고 싶어 했죠.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주소를 알고 있는 애들이 있어요. 찾아갔습니다 저희들이. 이사 가버리고 없는 집이 좀 많았고.

어떤 경우는 상당히 잘 살아요. 주유소 사장이야. "필요 없습니다. 또 기 나갑니다" 이러는 거야. 자식 버리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거죠.

아니 복지원인 거 같으면 밖에서 철문을 안 잠가야죠. 밤에 그 감시를 그렇게 할 이유가 있습니까?

외벽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끔찍스러울 정도로 높아요. 뛰어내렸다간 다리 완전히...

애들하고 같이 잔다고 딱 들어가니까. 밖에서 철커덩 하고 문을 잠가버리더라고. 야 이거 뭐야? 도대체?

오갈 데도 없는 사람들 데리고 와가지고 밥 먹이고 재워주고, 그래서 사회 적응시켜서 밖으로 내보내고자 하는 그러한 복지원이었다면. 굳이 문을 밖에서 잠글 이유가 있을까요?

뭘 잘못해야 밖에서 잠글 거 아닙니까. 정신병적인 상황이 된다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만약에 얘가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다면, 감옥 보내야지 왜 여기 보냅니까. 복지원이 감옥은 아니잖아요.

"우리 좀 나가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대놓고 이야기를 해요.

집 전화 가르쳐 줘놨더니 (한 원생이 퇴소해서) 전화가 왔습디다. 방을 하나 얻어 주고, 제매가 하는 공장에다 취직을 시켜주고. 근데 한 두 달 뒤인가... 어디로 사라져버렸어요.

부산구치소에 있는 거예요. 신문을 훔쳤대요. 그냥 가져간 거예요. 들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들이 있더란 말이지. 지도 거기(가판대) 있는 신문 들고 와서 팔았대요.

한 석 달 뒤인가 나왔더라고요. 또 부산구치소로 또 갔어요. (가판대에) 사람은 없고 종잇조각이 있길래 스윽 가지고 왔는데. 그게 수표야. 그 뒤로는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사람을 이런 식으로 가둬 놓으면 안 되는 구나. 이래 가둬 놓으니까 애가 사회 물정을 모르는 거예요. 들고 다니면서 파는 거 그거 다 허락 받아서 하는 건줄 모르는 거예요.

오히려 복지원이라고 그런다면 그런 걸 가르쳐줘야 되지 않나요? 그런 애들의 여러 실태들을 보면서 형제복지원이 정상적인 기관은 아니다...

형제복지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식당에서 배식을 받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식당에서 배식을 받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호주머니 조심하십시오"

85년도 말이었던 거 같으네요. "야학을 못 하게 됐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왜? 애들 검정고시도 많이 합격시켰는데? 그때 당시에는 중앙중학교에 애들 데리고 가가지고 시험 치게 했거든요.

막무가내입니다. 설명도 없습니다. "내일부턴 야학 안 됩니다."

그게 아마 형제복지원이 위기가 왔던 거 같아요. 외부 사람을 먼저 밀어냈던 것 같아요.

(얼마 뒤에) 문제가 터지더라고요. 그러더니 문을 닫아버리데요.

그때 염려했던 게 뭐냐 하면... 거기 있던 원생들이 쏟아져 나오면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것인가. 야학하던 친구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 원생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원생)를 그 뒤에 만났어요 사회에서. "길에 다니면서 호주머니 조심하십시오. 우리들 눈에 다 보입니다." 이러는 거야. 아마 소매치기로 풀린 애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가르친 애들이잖아 임마. 걔들이 그래 나쁜 짓 할 거 아니야." 농담으로 그랬지만은 참 가슴이 아팠죠. 사회 적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늘 걱정...

가족들하고도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버렸던 거 같아요. 입소를 하게 되면 집에 알려줘야 되잖아요. 안 알려준 경우가 상당히 많았으니까요. 너무 오랜 세월을 갖다가 서로가 못 만나게 했으니까...

지금도 사실은 정부가 지급하는 장려금이라든지... 노리고 하는 경우들이 보여요. 그래서 이거 정상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형제복지원 사태는 끝난 거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진짜 진정한 복지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거잖아요. 원하지 않는 걸 하는 게 무슨 복지입니까. 정말 제대로 된 복지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이대진 기자 djrhee@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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