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단절된 사회, 언제든지 ‘제2 정유정’ 나올 수 있다

전문가들이 진단한 ‘정유정 사건’

누구든 ‘은둔형 외톨이’ 가능한 환경
잘못된 욕구 외부 표출 사전 방지 필요
방치 땐 참혹한 유사 범죄 재현 가능성
청년 공간 등 밖으로 나올 출구 마련을
‘정유정 = 고립청년’ 단정도 경계 주문
“은둔 외 범행 동기 분석해야” 목소리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busan.com 기사추천 메일보내기
소통 단절된 사회, 언제든지 ‘제2 정유정’ 나올 수 있다
받는 분(send to)

이름(Name)

e-메일(E-mail)

보내는 분(from)

이름(Name)

e-메일(E-mail)

전하고 싶은 말
페이스북
트위터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지난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유정은 신상 공개 결정에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정종회 기자 jjh@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지난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유정은 신상 공개 결정에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정종회 기자 jjh@

고립 끝에 살인을 저지른 정유정 사건을 계기로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극단에 이르지 않도록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은둔형 외톨이가 급증하는 사회적 징후를 방치하지 말고 이들에게 소통의 계기를 제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적 교류나 소통을 하지 않으면서 3개월 이상 집 안에서만 머무는 사람을 지칭한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유정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코로나19와 맞닥뜨리면서 고립이 더욱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범죄물을 탐닉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만든 범죄 시나리오에 몰두해 살해부터 시신유기까지 학습한 대로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변호사가 오기 전까지 진술을 하지 않겠다고 조사를 거부하거나 이후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한 행동들은 대부분 범죄 미디어에서 자주 소개되거나 언급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고립청년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해서는 안 되지만, 불통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제2의 정유정'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위원은 “정유정을 특수한 경우로 단정지어선 안 된다”며 “한국은 이미 공동체성이 무너진 단절적 사회가 됐고 코로나19로 결정타를 맞았다. 누구든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잘못된 생각이 수정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성을 견고하게 쌓기 쉬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구조적으로 단절적 사회를 개선할 수 없다면 최소한 정유정처럼 외부로 잘못된 욕구가 표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정유정 사건에서 외부로 살인 욕구가 표출된 심적 변화 등 계기를 찾아 이를 해결해야 앞으로 참혹한 유사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은둔형 외톨이 수치가 늘어났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부산연구원 박주홍 책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상황, 그리고 최근에 나오는 통계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 청년 은둔형 외톨이가 상당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지목했다.

은둔형 외톨이가 급증하는 징후를 사회가 방치하면, 극히 일부이지만 극단적인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보다 앞서 고립 청년 문제를 겪었던 일본의 경우 이미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가정에서 사회로 확대된 지 오래다. 2019년 일본 도쿄 인근 가와사키에서는 오랫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던 50대 남성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초등학생 등에게 흉기를 휘둘러 18명이 부상 당하고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2015년에는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던 40대 남성이 이웃 주민에게 칼을 휘둘러 5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2월에는 20대 청년이 연고 없는 초등학생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유정 사건을 계기로 은둔형 외톨이가 극단적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청년 공간, 소셜다이닝 등 사회적 소통 기회를 공공에서 마련하는 것이 방법으로 제시된다.

박 책임연구위원은 “외국에는 공공장소 등에서 대화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편하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하는 벤치’를 둔 곳도 있다. 사회가 소통의 부담을 나눠서 장소를 마련한 것”이라며 “한국 사회도 소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 사회에서 소통 책임을 분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유정 사건을 서둘러 ‘은둔형 외톨이 사건’으로 단정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단법인 씨즈의 오쿠사 미노루 고립청년지원팀장은 “정유정 사건을 은둔형 외톨이 사건으로 보는 것은 사회적으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심과 편견을 조성하는 일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정유정이 은둔했다는 특성 이외에 다양한 배경을 살펴 범행 동기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책임연구위원도 “은둔형 외톨이는 일반적으로 외부인을 두려워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여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극악 범행을 저지르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라며 “다만 정유정이 사회적으로 방치되지 않았다면 혼자만의 망상이 확대되거나 사회적인 불만이 극단화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파트너스
해운대구
기장군
동래구
남구
수의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