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거대한 용광로, 다양한 문화 융합해 보석 같은 작품 탄생" [부산은 열려 있다]

전쟁기 화가·문인 등 교류 중심지
경제 등 많은 분야 창작 씨앗 역할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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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시절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대한도기의 페인팅 접시. 피란수도 시절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대한도기의 페인팅 접시.

부산은 이름처럼 ‘들끓는 가마솥’이었다. 〈부산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유승훈 부산근현대역사관 팀장은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 정부는 부산에 정착해 피란수도를 운영했고, 부산은 경제, 정치, 문화, 교육 모든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었다. ‘거대한 용광로’로 거듭났다”라고 설명했다.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온 피란민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전국 예술가들이 교류하며, 예술이 융합돼 보석 같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김환기를 비롯해 이중섭, 권옥연, 김은호, 박고석, 변관식, 유영국, 장욱진, 천경자, 이응노, 문신 등이 부산으로 왔고, 고단했던 피란 생활 속 예술 활동은 각자에게 응원과 공감, 자극과 비평으로 다가가 창작의 씨앗이 됐다.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부산시대〉를 출간한 박진희 마루 아트컴퍼니 대표(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중구 광복동의 다방은 미술가에게는 전시장으로, 문인에게는 작품 발표 장소 등으로 문화센터이자 살롱 역할을 했다”라고 소개했다. 광복동 일대는 국제시장과 인접해 소비와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작품을 팔아야 했던 화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됐다. 이중섭이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곳도 부산의 다방이었다.

광복동 밀다원 다방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에도 등장한다. 경남 통영 출신의 화가 전혁림이 피란 중 첫 개인전을 열었던 곳도 밀다원 다방이었다. 부산 중구청은 매년 연말 부산소설가협회와 공동으로 밀다원 문학제를 열며 예술의 꽃을 피웠던 광복동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당시 부산 영도의 대한도기 회사는 화가를 고용해 접시에 그림을 그리게 하며 생계를 도왔다. 도화 작업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로 김은호, 변관식, 김학수, 황염수, 이중섭, 서울대 교수였던 장우성과 학생이었던 김세중, 서세옥, 박노수, 장운상, 박세원 등이 있었다.

대한도기의 역사를 연구 중인 이현주 범어사 성보박물관 부관장은 “대한도기 지영진 대표는 서울대 장우성 교수와 제자들을 배려해 작업 공간과 숙소까지 제공했다”며 “3~4명씩 팀을 이뤄 일했다”라고 밝혔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부산에 세운 교육 시설과 병원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호주 선교사가 설립한 부산·경남 지역 최초 근대여성교육기관인 ‘부산진일신여학교’(일신여학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3·1운동을 일으켰고, 현재까지 호주 선교회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일신여학교 근처 일신기독병원에는 ‘매견시(맥켄지) 목사 기념비’가 있다. 매견시는 ‘나환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며 부산에서 30년간 헌신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두 딸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일신부인병원을 세웠다. 그것이 오늘날 일신기독병원이다. 1964년 미국 메리놀 수녀회의 파트리샤 앤 칸로이 수녀는 한국전쟁 이후 의료 소외계층을 챙기기 위해 부산에 메리놀 간호학교를 세웠고, 현재 부산가톨릭대학의 모태이기도 하다.

글·사진=김효정 기자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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