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와 힙포의 콜라보로 탄생한 ‘김치츠케멘’

부산 해운대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
츠케멘 수프에 김치 양념장 블렌딩해
잊혀지지 않는 감칠맛으로 조기 완판
판매 수익금은 사회단체에 모두 기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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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와 힙포의 콜라보로 탄생한 ‘김치츠케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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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고, 츠케멘은 일본 특유의 수프에 찍어 먹는 라멘이다. 부산 해운대 중동의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가 협업해서 신메뉴 ‘김치츠케멘’을 선보이고,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치츠케멘! 이름이나 취지는 너무 좋지만, 국적은 물론 먹는 방식이나 재료도 전혀 다른 김치와 츠케멘을 어떻게 맺어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일을 처음 벌인 그 사정이 궁금해서 양쪽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가 협업해서 ‘김치츠케멘’을 선보였다.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가 협업해서 ‘김치츠케멘’을 선보였다.

■노포 돼지국밥집의 변신은 무죄

해운대 신도시에서 맨 먼저 생긴 돼지국밥집 ‘양산국밥’을 찾아갔다. 양산국밥은 본격적인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던 1996년에 문을 열었다. 30년 세월이 흐르며 어느새 노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운대 신도시에서는 신학기에 반장이 되면 햄버거 대신 국밥을 한턱 쐈다. 양산국밥은 한 반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돼지국밥을 먹고 가던 곳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응원을 마친 청년들이 “양~산국밥!”이라고 외치며 들어왔다. 이제는 그때 ‘신도시 키즈’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그 아이들을 위해 만든 메뉴가 아담한 ‘유아 식사’다.


‘양산국밥’은 신창국밥 스타일의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양산국밥 제공 ‘양산국밥’은 신창국밥 스타일의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양산국밥 제공

양산국밥은 생각했던 국밥집 같지 않았다. 깔끔한 외관에 높은 층고, 그리고 시원한 오픈 키친은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모습이었다. 양산국밥은 2019년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처럼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부산역에 있는 양산국밥 2호점은 2021년 부산 돼지국밥집 가운데 최초로 음식을 서빙하는 로봇을 도입해 <부산일보>를 비롯해 각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돼지국밥, 김치우동, 순대스테이크 등의 밀키트 판매는 전통에만 안주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였다.


모둠 수육은 목살, 삼겹살, 항정살, 피순대, 오소리감투가 유기그릇에 담겨 나온다. 모둠 수육은 목살, 삼겹살, 항정살, 피순대, 오소리감투가 유기그릇에 담겨 나온다.

목살, 삼겹살, 항정살, 피순대, 오소리감투가 곱게 담긴 모둠 수육은 유기그릇 위에서 빛이 났다.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느낌이 들 만큼 부드러웠다. 알고 보니 저온 진공 조리 방식으로 공을 들인 덕분이었다. 수육에 올려 먹도록 명란이 함께 나왔는데, 의외로 둘이 잘 어울렸다. ‘겉바속촉’의 순대스테이크는 간식을 넘어 요리의 세계에 도달해 있었다. 돼지 살코기, 선지와 함께 5가지 곡식을 넣고 3일간 건조한 뒤 튀겨낸 수제의 맛이다. 돼지국밥집에 심지어 어복쟁반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돼지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토렴이 최적의 조리법이라고 말한다. 양산국밥 제공 돼지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토렴이 최적의 조리법이라고 말한다. 양산국밥 제공

돼지국밥은 따로국밥과 토렴국밥 두 종류다. 신창국밥 스타일의 맑은 국물이 양산국밥의 특징이다. 사실 돼지국밥 좀 먹는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토렴이 맛을 위해서는 최적의 조리법이라고 엄지척한다. 토렴하면 밥알을 씹는 식감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다 먹어갈 때쯤이면 육수에 밥물이 배어 나와 구수한 맛을 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토렴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인데 양산국밥은 토렴국밥에 1000원 더 비싸게 받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김성운 대표가 3대째 양산국밥을 잇고 있다. 양산국밥 제공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김성운 대표가 3대째 양산국밥을 잇고 있다. 양산국밥 제공

양산국밥이 마음에 쏙 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소주와 맥주는 물론이고 막걸리, 증류식 소주, 일본 소주, 고량주, 싱글몰트위스키까지 잔술로 취향껏 골라 마실 수 있게 하고 있어서다. 누가 주당 마음을 이렇게 잘 읽고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해진다. 그 주인공이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3대째 가업을 물려받은 김성운 대표다. 김 대표는 “돼지국밥 가격이 부산에서 가장 비싼 편이라는 사실이 죄송스럽지만 핸드드립 거피가 일반 커피보다 비싼 것처럼 토렴국밥도 더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다. 국밥은 할머니가 시작한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 외의 부분은 저의 취향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산국밥의 상호는 할머니의 고향 양산에서 따왔다. 부드러운 인상의 김 대표 얼굴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부산 명란 키우고 싶은 ‘타라코소바’

‘타라코’는 일본어로 명란. 부산 해운대 중동 ‘타라코 소바’는 이름처럼 명란을 많이 활용하는 면 요리 가게다. 지난달 20~21일 이곳에서는 ‘공생(共生)’이라는 주제 하에 양산국밥과의 협업 행사로 ‘김치츠케멘’이라는 신메뉴를 선보였다. 행사 두 번째 날 골목의 이 작은 가게 안에 들어서자, 활기가 몸으로 느껴졌다. 주방에 잘 보이게 걸어둔 ‘명란 아끼면 망한다’라는 문구가 많은 걸 설명하고 있었다. 타라코소바하면 역시 명란츠케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츠케멘을 시키면 삶은 면과 함께 명란이 그득한 별도의 수프가 나온다. 명란츠케멘 수프는 원래부터 감칠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타라코소바’의 김치츠케멘은 흑미면을 수프에 살짝 담갔다가 먹는다. ‘타라코소바’의 김치츠케멘은 흑미면을 수프에 살짝 담갔다가 먹는다.

진도산 흑미로 매일 자가 제면하는 쫄깃한 면을 김치츠케멘 수프에 살짝 담갔다가 입안에 빠뜨렸다. 이번에 한정 상품으로 만든 김치츠케멘 수프는 시뻘건 감칠맛의 바다 그 자체였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해 집에 올 때까지도 감칠맛은 내리지 않고 졸졸 따라왔다. 흑미면과 함께 나온 항정살 수육 서너 점과 양산국밥의 맑은 육수. 거기다 밥 한 공기까지 해치우니 두 가지 메뉴를 한 끼에 먹는 느낌이었다. 츠케멘 수프는 남기고 가기에 아깝지만, 너무 진해 마시기엔 부담스럽다. 그럴 때는 ‘와리 수프’를 달라고 해서 좀 연하게 만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평소의 명란츠케멘 수프에 양산국밥의 시그니처 메뉴인 얼큰우동국밥의 핵심 김치양념장을 블렌딩했다. 김치를 업고 업그레이드된 수프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어울렸다.


주방에 걸린 ‘명란 아끼면 망한다’라는 문구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방에 걸린 ‘명란 아끼면 망한다’라는 문구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틀간 김치츠케멘 200인분 한정 판매는 조기에 완판됐고, 수익금은 사회단체에 모두 기부했다. 김치츠케멘을 빨리 재출시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김치츠케멘을 츠케면의 고향 일본 도쿄로 들고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게다가 “좋은 일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후원을 좀 하고 싶다”라는 손님들의 DM도 쏟아졌다. 부산 돼지국밥집과 일본 소바집,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게의 협업이 만들어 낸 김치츠케멘은 대박이었다. 어떻게 일본 음식 츠케멘에 한국 김치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


백종한 대표는 명란 시장을 지금보다 키우고 싶어 한다. 타라코소바 제공 백종한 대표는 명란 시장을 지금보다 키우고 싶어 한다. 타라코소바 제공

타라코소바 백종한 대표는 “명란의 고향은 부산인데 명란이 일본에서만 사랑받는 모습에 자극받아서 명란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 현재 매장 두 곳에서 한 달에 명란 100kg을 소비하는데, 명란 시장을 더 키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일찍부터 운동을 시작해 레슬링 선수 생활을 했다. 운동을 그만둔 뒤에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 대기업 공채로 들어가서 참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저녁이 있는 삶’, 새로운 자영업을 위해 저녁 영업은 하지 않는다.


■‘미쉐린 스타로드’가 맺어준 인연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지만 서로 모르고 지냈다. 부산시의 ‘미쉐린 스타로드 프로그램 지원’이 두 가게를 연결해 준 셈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 청년 셰프와 외식업 운영자가 세계 미식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목적으로 지난해에 처음 마련됐다.


‘공생(共生)’이라는 주제로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의 협업이 열렸다. ‘공생(共生)’이라는 주제로 양산국밥과 타라코소바의 협업이 열렸다.

두 사람은 오사카·교토를 둘러보는 일본 탐방팀 7명에 포함됐다. 오사카에서 새벽 운동을 위해 나가다 우연히 마주쳐 같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속을 터놓게 되었다. 마음이 통한 이웃사촌끼리 머리를 맞댄 결과가 노포 양산국밥과 ‘힙포(힙한 가게)’ 타라코소바의 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양산국밥 김 대표는 “부산시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저희를 지원해 주셨으니, 결과물을 내놓고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라코소바가 좋은 제안을 해서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라고 말했다. 타라코소바 백 대표는 “이번 행사 끝나고 너무 많은 업체에서 협업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자극받고, 기부 문화가 확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진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산국밥 김성운 대표(왼쪽)와 타라코소바 백종한 대표. 양산국밥 김성운 대표(왼쪽)와 타라코소바 백종한 대표.

두 가게의 협업은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빌리지를 성공시킨 푸드트래블은 오는 6월 ‘노포×힙포’라는 주제로 세상에 없던 콜라보레이션 신메뉴를 포트빌리지 현장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행사 참가 노포 5곳은 내호냉면, 신발원, 덕화명란, 옥숙팔복통닭, 아미산이다. 힙포는 타라코소바를 포함해 10곳이다. ‘미쉐린 스타로드’에서 또 뭐가 새로 튀어나올지 궁금해진다. 부산 대표 음식인 돼지국밥과 밀면도 힘든 시절에 나왔지만, 노포와 힙포의 만남처럼 계속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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