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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부산 북구 화명동 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주민들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를 둘러싼 비리와 갈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배경으로는 막강한 계약 권한에 비해 이를 견제할 장치가 부실하다는 점이 지목된다. 입대의는 조경·도색·경비 등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에 이르는 각종 용역 계약과 예산 집행을 사실상 좌우하고 있지만, 이를 상시적으로 감시·통제할 체계는 부족한 실정이다.
주민 대표 조직이 아파트 운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임에도 전문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제도적 안전장치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정보 공개만으론 한계”
입대의는 일반 주민들로 구성된 비전문·비상근 조직이지만 아파트 주요 사업을 의결하는 권한을 쥐고 있다. 대부분의 공사와 용역이 입대의 결정으로 추진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특정 업체와의 유착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리규약상 계약 내용은 공고 등을 통해 주민에게 공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사 단가나 계약 조건의 적정성은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검증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보 공개가 실질적인 감시로 이어지지 못하고, 관리규약 역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 더해 비용 산정을 둔 갈등도 반복된다. 실제 부산 북구 화명동 A 아파트에서는 입대의가 도색 공사 예산으로 15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논란이 불거졌다. 건설업 종사 주민이 외부 견적을 통해 공사비가 5억 5000만 원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항의하면서 주민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아파트 비리의 특성상 내부 자정과 외부 공론화가 모두 쉽지 않은 구조적 한계도 있다. 계약 과정의 위법성을 입증할 자료 확보가 어려워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지자체 감사 역시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수준에 그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부산 기초지자체의 입대의 관련 고발은 연간 0~1건 수준에 그치는 반면, 시정명령·과태료 처분은 수십 건에 이른다.
지자체의 관리·감독 여건도 지역별 편차가 크다. 올해 공동주택 감사 예산은 기장군이 2640만 원인 반면 사상구는 600만 원 수준에 그친다. 동구·중구·영도구 등 원도심권 지자체는 관련 예산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군의 감독 역량부터 격차가 드러나는 셈이다.
■“외부 전문가 참여 필요”
전문가들은 입대의의 권한이 커진 만큼 이에 상응하는 견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아파트 단지 내 각종 공사와 용역 계약, 예산 집행 등을 사실상 좌우하는 구조인 만큼,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외부 회계 감사 의무화나 계약 과정 공개 확대, 주민 감시 기능 강화 등을 통해 운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아대 경영학과 조용언 명예교수는 "그동안 무관심 속에 누적돼온 구조적 문제가 이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공동주택 비위는 자정이 어려운 구조인 만큼 주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감시가 있어야 해소될 수 있다"며 "누적된 문제가 분출된 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동아대 강정규 부동산대학원장은 “입대의 운영과 관련한 제도 개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관련 협회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쉽지 않은 구조”라면서도 “단순히 주민 간 갈등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관련 입법과 정책 논의에 정치권도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