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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年雪이 뒤덮인 제3의 極地 히말라야에 부산의 젊은이들이 올랐다. 1962 년 朴鐵岩씨를 대장으로 한 한국隊가 다울라기리 2峰을 偵察試登,한국의 히말라야 시대의 막을 올린지 20년.
그동안 수많은 한국의 젊은 알파인 엘리트들이 국력의 신장에 힘입어 히말라야의 등반이라는 지리하고도 힘든 의지의 길을 걸어왔다.
히말라야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의 複合語다.
히마(HIMA)는 눈(雪) 이고 아라야(ALAYAS) 는 거처(居處)로 히말라야는「눈의 거처」라는 뜻이다. 印度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북쪽의 영원한 雪山을 히말라야하고 했다.
이 히말라야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인간의 의지와 신념만으로도 돌파할 수 없는 수많은 난관이 많다.
그러나 부산 학생산악연맹의 파빌峰원정대는 이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그 정상에 올라 未知의 산을 찾아 히말라야에 모여드는 세계의 등산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산악인의 메카 네팔은 히말라야 山脈을 뒤로하고 사철 白雪에 덮인 連峰이 구름위로 치솟아 있는 小王國.
山岳國네팔의 동서 길이는 약 8백㎞,남북이 약 2백40㎞로 우리나라의 3분의2인 14만㎢밖에 안된다. 1천4백만의 인구중 구르카族·네와르族·구란族·라나族·타갈리族등 종족 구성이 복잡한큼 言語도 다양하다. 때로는 카트만두에서 상용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는 모두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이다.
험준한 산악과 함께 엄격한 鎖國정책을 써. 네팔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50년 가을 쿠데타로 立憲君主國이 들어서고 부터. 이어 1956년 마핸드라 비르 비크람 前왕이 왕위를 계승한 후 네팔의 開化와 관광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부터 히말라야 連峰에 도전하는 세계의 산악인들이 줄지어 입국하기 시작했다.
올해의 경우 네팔을 찾은 등반대는 프레 몬순기(봄철)34개팀과 포스트 몬순기(가을철)41개팀에 동계 10여개팀을 합하면 80개팀이 넘는다. 여기다 정찰대와 2~3명이 팀을 이루어 트레킹(등산관광) 허가만을 받아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을 해치우는 것까지 합하면 올해의 등반대는 2백여개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겨울철을 제외하면 首都 카트만두는 인구 50여만명 중 10분의 1이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할 정도다. 이 때문에 카트만두에는 수많은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택시들이 줄을 잇는 등 세계의 다른 어느 도시 못지않게 붐비고 있다.
블루진과 오토바이·자동차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카트만두에서는 이제 古代와 現代가 조화를 이루는 고요한 도시의 모습은 사라져가고 있다.
도시 전체가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매연에 찌들어가는가하면 남루한 옷차림의 원주민들과 귀걸이·코걸이 장식에 빨간물감을 얼굴에 칠한 여인들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변한것이 없다면 印度에서 처럼 도로 한복판에 소들이 한가롭게 누워 있어도 쫓는 사람이나 쫓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네팔하면 히말라야를 연상하지만 수도 카트만두에 들어서면 히말라야보다는 힌두교의 나라임을 단번에 알수 있다. 소들이 사람보다 더 보호받는(?) 것 아 니더라도 네팔의 어느 곳을 가던지 곳곳에 힌두교와 관계 깊은 아름다운 조 각을 볼 수 있다.
특히 처마를 받치고 있는 받침대에 性器를 새긴 男女神의 조각은 그 형태가 실물과 비슷하다. 사원과 탑과 조각들이 즐비한 카트만두의 거리를 돌아다녀보면 女神의 性器가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는 조그마한 탑의 대부분이 관광 객과 주민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난다.
세계에서 유일한 힌두교의 왕국인 네팔은 포터와 셰르파·사다 등 현지 고용인을 동반하지 않는 외국 등반대의 入山을 허가하지 않는다. 이보다 엄격한것은 종교 때문에 외국 등반대의 쇠고기 통조림 반입도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쇠고기는 절대로 안먹는 현지인들 중에서 물소고기는 즐겨먹는 사람이 많은 곳도 네팔이다.
雪山과 조각의 나라 네팔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면 그것은 축제다. 1년의 3분의1이 축제와 휴일로 관공서가 문을 닫는다. 왕이나 왕비의 생일은 물론 왕비의 어머니 생일에도 전국이 2〜3일간의 축제를 하는 나라다. 왕이 외국나들이를 해도 관공서가 쉰다. 쿠마리라는 살아있는 처녀신이 존재하는 이 나라의 최대 축제는 닷산축제로 올해는 지난 10월23일부터 시작되었다.
10여일간 계속된 이 힌두교도들의 축제는 집집마다 물소·양·돼지·닭 등 동물의 목을 쳐 그 피를 집에 뿌리고 모든 가족이 모여 쉰다. 포스트 몬순기에 입산했던 대부분의 등반대가 철수할 시기와 겹친 이 축제 때문에 등반대들은 철수 포터들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한다.
文明세계를 향해 이제 서서히 문을 열기 시작한 네팔,산속깊이 자리잡은 데다 現代文物을 외면한 덕에 5〜6세기의 찬란한 종교 문화의 유산과 자연이 파괴되지 않았던 네팔도 이제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그 처녀성을 잃어 가고 있다.
<글·사진 李鍾吉 특파원>
[사진] 조심 조심…한 걸음씩
아이스풀과 크리배스의 함정이 있는 루트에서 안전은 자일과 자기의 등반 감각에 맡길 뿐이다.
[사진] 청초한 히말라야의 꽃 해발 4천7백m의 고산식물.
[사진] 파빌頂上의 태극기
부산 산악인의 기개를 세계에 알리는 정상의 순간. 태극기와 네팔기가- 李承烈 대원의 피켈에 걸려 파빌峰 정상에서 휘날리고 있다.
[사진] 安全을 기원하는 山神祭
해발 4천3백50m에 세워진 베이스 캠프에서 등반이 시작되기 전에 행한 라마 불교식 산신제.
[사진] 橋梁 가설 작업
파빌峰 등반의 난관은 안쿠코라를 건너는 일. 모두 6개의 교량을 가설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