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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뜨끈한 생태탕을 먹다가 문득 얼마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강원도가 2015년부터 해오던 어린 명태 방류 사업을 올해부터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방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명태는 1980년대 후반까지는 하도 많이 잡혀 ‘강원도에서는 개도 물고 가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명태가 동해에서 소멸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국민 생선’이라 불리던 명태가 홀연히 사라진 이유가 과연 수온 상승뿐이었을까? 겨울이면 더 생각나는 생선 명태를 살펴 봤다. 뜻밖에도 따뜻한 부산과 추운 바다를 좋아하는 명태 사이의 끈끈한 인연이 드러났다.
강원 인제군 용대리의 한 덕장에서 주민들이 명태를 덕장에 내거는 덕걸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선창고에서 가곡까지 이어진 인연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 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어떤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원산은 조선 시대부터 명태의 집산지였고, 가곡 ‘명태’는 1951년 부산에서 탄생했다.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 머물던 시인 양명문이 광복동 한 술집에서 안주로 나온 북어를 보고 즉석에서 시를 썼다. 함께 술을 마시던 작곡가 변훈은 그 자리에서 곡을 붙였다. 성악가 오현명은 이듬해 중앙동 한 다방에서 가곡 ‘명태’를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오현명은 50년 넘게 이 노래를 부르며 “명태 덕분에 내가 먹고살았다”라고 고마워했다.
명태, 북어, 동태, 황태, 먹태, 막물태, 노가리, 코다리, 원양태…. 명태를 부르는 이름이 수십 개나 된다. 이렇게 이름이 많은 생선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중국에서 명태를 부르는 ‘밍타이위’, 러시아어 ‘민타이’, 일본어 ‘멘타이’ 등 각국 명태 이름 역시 한국어 명태에서 기원했다. 북어(北魚)는 지금은 말린 명태라는 뜻으로 의미가 축소됐지만 원래는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라는 뜻으로 명태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었다. 찜으로 즐겨 먹는 ‘코다리’는 반건조한 북어다. 명태를 말린 상태에 따라 부르는 여러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한반도의 기후는 명태의 건조에 적합했다. 우리는 별다른 맛이 없어 어묵 재료로나 사용되는 명태를 맛있게 건조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즐겨 먹었던 민족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한 황태덕장에서 명태가 황태로 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사람들은 사라진 남선창고를 지금도 많이 기억한다. ‘부산 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남선창고는 명태 거래의 중심지였다. 남선창고는 1900년에 초량에서 회흥사(會興社)라는 이름의 명태고방으로 출발했다. 우리나라 근대 창고업의 효시였다. 그 뒤 북어창고, 북선창고를 거쳐 남선창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에는 명태 주산지 함경도와 최대 소비시장인 서울 간에 철도가 없었다. 또 일본인이 좋아하는 명란은 부관연락선을 통해 시모노세키로 갔다. 함경도에서 해상을 통해 가져온 명태를 국내외에 팔기 위해서는 부산에 창고가 필요했다. 초량 객주와 함경도 객주들이 힘을 합쳐 남선창고를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창자 같은 생선 부산물을 임금 대신 받아 젓갈로 담가 먹어 젓갈 문화가 더 확산됐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남선창고를 통해 나온 명란 맛에 빠진 사람 중에는 가와하라 도시오 씨도 있었다.
2011년에는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췄던 명태가 적은 양이지만 일부 잡혀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입맛은 부산 사람이었다. 특히 초량에서 살며 맛본 명란 깍두기를 좋아했다. 일본의 패전 후 후쿠오카에 정착한 그는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숙성절임 명란(가라시 멘타이코)을 만들어 팔았고, 이후 일본 최대 명란 기업 ‘후쿠야’ 창업자가 되었다.
부산 출신의 주인공이 일본 후쿠오카에서 멘타이코를 개발해 정착하는 과정은 일본에서 영화 ‘멘타이코 삐리리’로 만들어졌다. 2019년에는 부산푸드필름페스타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되기도 했다. 후쿠야 직원들은 2023년 부산에 와서 명란의 역사와 부산과 명란의 관계를 취재해 자체 제작하는 카탈로그에 특집기사로 실었다. 부산 동구는 그다음 해에 명란 미식관광 활성화를 위해 후쿠야를 방문하는 등 부산과 일본 사이에는 명태와 관련된 교류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명태 배들은 모두 부산으로
지난 11일 부산 서구 감천항에 있는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아갔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명란 어획량이 가장 많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내 가공 유통 시설이 변변찮아 1990년대부터 명태를 잡으면 명란을 바로 동결해서 이곳으로 온다. 부산에는 냉동창고가 많고 명란 제조 기업도 모여 있기 때문이다. 매년 3~5월이면 전 세계 바이어들이 명란 국제 검품장이 있는 감천항으로 모인다. 부산이 사실상 러시아 명란의 산지가 된 셈이다.
오로지 명란 한 우물만 파는 ‘덕화푸드’도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 만나본 부산을 대표하는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들이나 이름난 빵집에서는 덕화푸드 명란을 재료로 쓴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덕화푸드는 명란 최대 소비국 일본을 제치고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연속으로 세계 최고가 명란을 낙찰받기도 했다. 명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전국 30여 업체 중에서 명란 하나만 만드는 곳은 유일무이하다.
덕화푸드는 역사 문헌을 연구해 조선명란을 새롭게 재현했다. 덕화푸드 제공
덕화푸드는 수산 제조 부문에서 지금까지 유일한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창업자 장석준 씨의 뒤를 이어 ‘수산식품 명인’이 된 2세 장종수 대표가 이끌고 있다. 명란 일본 수출로 성장한 회사가 아베노믹스로 인한 환율 인하로 수출을 전면 중단하고도 살아 남아 명란 최고 기업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비결은 연구개발에 있어 보였다. 덕화푸드 기업 부설 연구소에서는 신기하게도 공학 박사와 셰프 출신이 한데 모여서 연구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2017년부터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박찬일 셰프, 김만석 작가와 함께 명란에 관한 역사 문헌 연구도 시작했다. 장 대표는 “젓갈은 짜야 하는데, 저염 명란이 반드시 좋은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명란 만드는 회사가 명란 역사를 잘 모른다는 사실도 자존심이 상했다. 찾아보니 일본에는 명란 관련한 역사책들이 다수 출판되었고, 부산의 남선창고가 명태 물류의 중심지였다는 기록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수산 제조 부문 유일한 명장인 장석준 전 덕화푸드 대표와 수산 제조 기술 분야 명인에 선정된 아들 장종수 대표. 덕화푸드 제공
역사 문헌 연구 결과는 2020년부터 화제가 된 조선명란 출시로 이어졌다. 조선명란은 소금, 고춧가루, 마늘, 산초를 이용해 전통 방식과 가깝게 만든다. 기존 명란보다 소금이 두 배 정도 더 들어가 짠맛이 강하다. 옹기에 넣어서 숙성시킨 조선명란 뚜껑을 열자 잘 삭은 해산물 향이 살짝 느껴졌다. 단단한 조선명란을 멜론 같은 과일에 올려 먹으니 맛이 기가 막히다. 고급 술안주로도 썩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덕화푸드 장종수 대표. 덕화푸드 제공
장 대표가 나름대로 연구와 고민 끝에 찾아낸 동해안에서 명태가 사라진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남북 분단이었다.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의 조사 지도에 따르면 명태는 함경도를 중심으로 집중 회유하고 강원도까지는 일부 분포한다. 그는 “강원도 바다는 명태가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꼬리 부분이었다. 노가리라고 부르면서 새끼까지 모두 남획하지 않았나. 우리가 안 잡으면 상대방만 살찌우게 된다는 식으로 어장을 둘러싸고 남북이 경쟁적으로 남획한 결과 남쪽은 완전 멸종하고 북쪽도 엄청 적게 남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1972년 제2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위해 우리측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열린 환영 오찬에서 가장 먼저 명란찜이 식탁에 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식탁에 놓인 명란은 두 알이 한 배에 들어 있는 온전한 형태였다. 명태 한 마리에서 나온 명란 두 알이 한 배에 들어 있듯이, 우리도 한 배에서 나온 동포(同胞)가 아니냐는 의미였다.
명란달래무침. 덕화푸드 제공
■애틋했던 명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명태는 제사상에 올라 ‘절을 받는 물고기’다. ‘액막이 물고기’로 굿판과 고사에도 단골로 출연한다. 이처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생선은 명태가 유일하다. 식당에서 생태탕에 든 생태는 대개 북해도산이다. 북어는 원양산을 가져와 강원도 덕장에서 말려서 만든다. 사라진 동해 명태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었다. 온 국민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한 각별한 문화였는데 우리는 명태를 너무 쉽게 잊고 말았다. 남선창고를 그렇게 허무는 것도 아니었다. 장 대표는 "명태에 관한 역사 연구를 하면서 우리가 남획해서 명태를 다 쫓아 보냈는데 명란이 다시 한반도로 찾아와 손을 건네는 느낌이 들었다. 명태의 목소리 같은 게 들렸다. 우리와 명태의 관계는 참 애틋하다”라고 말했다. 동해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겨울이면 함경도, 강원도 연안으로 회유하던 명태를 언젠가 우리 바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