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주민 목소리서 갈등 줄일 대안 모색
생생한 주민 목소리서 갈등 줄일 대안 모색
사회갈등연구소 연구팀이 지난달 4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일대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예정 구간을 확인하고 있다. 박세익 기자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가 만족하는 타협점을 이끌어내는 역량과 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느냐가 국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갈등관리 체계와 국민적 역량은 '원시적인 싸움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갈등에 따르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본보 취재진은 지난달 4~5일 이틀간 사회갈등연구소 연구팀과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구간의 갈등영향평가 과정에 동행,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갈등 조정 과정을 취재했다.
피해 예상 마을서 사업 설명
"부작용 최소화" 주민도 공감
방음벽 등 문제 제기된 부분
도로공사 갈등 최소화 검토
#2월 4일 오전 11시, 김해시 진례면사무소
추운 날씨 속에서도 20여명의 진례면 이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속도로가 마을 인근을 지나게 된다는 소식에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들을 맞이한 건 사회갈등연구소 연구팀. 전국 최초로 고속도로가 개설되기 전에 '갈등영향평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부산신항에서 이어지는 민자 도로구간과 접하는 제 1공구로,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가 출발하는 지점. 타당성 구간 계획에 따르면 진례 분기점이 설치될 예정이며, 학성마을 등 주거지 통과 문제와 공단건설 계획 등이 갈등의 '씨앗'이다.
현장에서 연구팀과 설계사의 현황 설명에 이어 타당성 조사 노선도가 펼쳐지자 모인 이장들의 질문이 봇물처럼 터졌다. "우리 마을 근처에 진출입로(IC)가 들어서나. 우리에게 고속도로가 아무 의미가 없다." "통과 구간이 교량인가 성토한 건가. 성토라면 마을 사이가 단절되고, 농작물 일조권, 주민 조망권에 피해를 줄 게 뻔하다."
중구난방식으로 터져나온 주민들의 질문에 한 설계사 관계자가 현황을 설명하자 이내 주민들은 "다른 대안이 있다"며 여러 방법을 제시, 한동안 논란이 거듭됐다.
이장단은 "이렇게 미리 적극적으로 의견수렴한 적이 없어 의외다. 실시설계 확정 이전에 계획을 통보해 달라. 이전처럼 다 해놓고 밀어붙이면 주민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요구했다.
#오후 1시 한림면사무소 & 어병마을
이곳에서 만난 최정규 면장은 "병동나들목 설치 구간의 새로 생긴 공장 등의 민원으로 갈등이 예상된다"며 "명동마을 일대는 주민들이 생각하는 발전 중심지인데 고속도로가 통과하면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제발 주민들 고통을 이해해 주세요. 저기 보이는 국도에서 나는 소음과 먼지가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아마 주민들 모두 반대할 겁니다." 김해시 한림면 어병마을에서 만난 주민 배모씨의 하소연이다. 연구팀은 병동나들목이 설치될 이곳에서 주민과 도로공사 김해시 등이 협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오후 2시30분 생림면사무소
나전나들목이 설치될 구간을 들여다 본 이장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이건 이야기로 듣던 것과 다르다.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금도 공장들 때문에 사는데 지장이 많은데, 이 정도면 마을이 없어지는 게 아니냐. 방음벽 수준의 대책으로는 설득이 안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이장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내가 이장 개인으로서 감당할 내용이 아니다"라며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설계사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안은 아니다. 지금은 어떤 갈등이 있을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며, 여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곳에서도 역시 '대안'을 놓고 기술적 문제와 '현실적 고통'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오후 4시 대동면사무소
지역 주민과 이장단 등 10여명은 "외곽고속도로 계획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며 "하도 많은 도로가 대동면을 지나고 있지만 모두 통과할 뿐 주민들에게 이득이 될 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특히 고속도로와 새로 개설될 국도까지 접하는 낙동강변 대감마을은 타당성 노선대로라면 마을이 아예 양분될 위기에 처해 있어 반대운동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도로공사는 여러 대안노선을 검토 중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도로만 계속 생겨 불만이 폭발할 지경"이라며 "가능하면 교량을 건설해 농작물 피해를 막아달라. 젊은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 이제는 저항할 힘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 참여한 연구팀 서정철 연구위원은 "끊임 없는 개발 현장에 둘러싸인 주민들은 이미 지쳐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예방차원의 갈등영향평가에 이어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가 갈등 조정에 나서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진정한 갈등관리 선진화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