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취재는 피·땀·눈물"
구와바라 시세이1964년 8월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45년째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의 변화상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 그만큼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진 사진가도 드물다. 국내 사진가들이 자칫 빈 공간으로 남겨놓을 뻔한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그는 10만여장이 넘는 사진으로 '기록'했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 베트남 파병, 팀스피리트 한·미연합군사훈련, 미군 기지촌, 민주화운동 그리고 청계천 판잣집과 부산의 달동네까지.
'격동 한국'생생한 현장 렌즈에 담은
日 다큐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8월 9일까지 고은미술관서 기획전
그가 오는 8월 9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온천길 고은사진미술관에서 1960~1970년대 격동 한국의 생생한 현장과 미나마타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 73점으로 전시를 갖고 있다. '고은사진미술관 국제사진가 기획전-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내가 본 격동의 한국'. 지난 6일 '작가와의 만남 및 세미나'를 가진 구와바라 사진가를 만났다.
"한국의 치부에 렌즈를 들이대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일본인 사진가로선 더더욱요. 한마디로 피와 땀과 눈물의 시간이었죠. 하지만 60년대 중반 서울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눈에 상당히 매력적이었어요. '굴욕 외교'(한·일회담) 반대 시위, 첫 해외 파병(베트남) 등 각종 문제가 불거졌으니까요. 뉴스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은 또 다르잖아요."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
미나마타병 찍으면서 다큐 사진가 입문
60년대 서울, 각종 뉴스 터진 매력적 도시
한국 취재한 40여년이 가장 보람
뉴스와 다큐멘터리 사진의 차이.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뉴스에서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뉴스에 나오기 전에 더 빨리 '발견'해 내고, 더 깊이 있게 천착하는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뉴스 사진은 알기 쉽게 찍지 않으면 안 되기에 설명적이고 와이드 광각사진을 주로 써요. 반면 다큐멘터리 사진은 10장을 찍는다면 적어도 1~2컷은 감동을 줘야 하기 때문에 망원 클로즈업 등으로 변화를 주게 되죠."
구와바라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입문한 것은 스물셋의 나이로 첫 번째 테마인 수은 중독에 의한 환경재난인 '미나마타병'을 찍으면서부터. 그는 이 작업으로 일본 사진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상(1962년)을 수상한다. 그때 구와바라는 어떤 '권력가'(기업)로부터 미나마타병 관련 사진 필름 250통을 1억엔에 팔지 않겠느냐고 은밀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는 거절했다.
그가 사진가로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두 번째 작업 '한국'을 찍으면서. "예술사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에 있다고 봅니다. 시시한 기념사진도 기록사진이지만 단순히 찍어서 기록하기보다는 제3자가 보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어떻게 프레임을 정해서 찍느냐의 문제죠. 이번 전시만 해도 지금의 모습밖에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 선인들의 엄연한 발자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일흔셋. 하지만 새 작업이 궁금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아들 낳겠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극구 '비밀'임을 강조하면서도 여든 살까지는 사진 작업을 계속 할 거라고 말한다. 얼핏 들려준 대화에선 '평양'도 찍고 싶고, '독도'도 기록하고 싶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도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봉하마을을 찍겠다며 서둘러 김해로 떠났다.
"비록 외국인이지만 한국이라는 테마를 만나 행복했어요. 제 인생에 있어 한국을 취재한 40여년이 정말 보람 있었으니까요." 마지막 소감을 건네는 그 옆에는 한평생을 함께해 온 한국인 아내가 서 있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