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는 새벽 03:00 산사서 사진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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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으므니'

이상일의 사진은 분명했다. 늙은 어머니가 죽음이란 먼 길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으므니', 녹슨 영정 속에서야 면사포를 쓴 신부로 그려진 참혹한 오월 광주의 기억을 담은 '망월동'(그는 계엄군이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어촌 온산면 당월리 사람들을 담아낸 '메멘토모리'.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역사가 맞물려 돌아가는 그의 사진은 대상을 전면에 드러내 말하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고은미술관 10월 31일까지 이상일 사진전

자아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고민

대상을 전면에 드러내 전달

2년 전부터 범어사에 머물며 작업


근데, 범어사를 찍은 최근의 흑백사진들에서 그는 사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과연 한 개인이 역사나 세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발언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사진은 객관적인 소통의 도구인가, 라는 질문이다.

지난 2007년부터 범어사에 눌러 앉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거냐고, 스님들의 일상을 담느냐고, 범어사가 소장한 보물들을 찍느냐고. 그가 찍은 건 어둠이었다.

이상일은 스님들이 일어나는 오전 3시에 사진을 찍었다. 빛이 모두 사라진 한밤에, 그것도 빛 없이는 무용지물인 카메라를 들고 말이다. 사위를 분별할 수 없는 그 시간에 사진을 찍으면서 그는 최대한 사진을 지웠다.

"빛이 없는 캄캄한 밤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빛이 없는 데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을까? 낮에 돌아다니면서 봐뒀던 곳은 똑같은 어둠이라도 처음 본 사람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오온' 시리즈로 이름 붙인 이번 사진들은 존재와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멀리서 보면 까맣거나, 어렴풋한 형체만 보일 뿐이다. 작은 사진이라면 코앞에 두고 보겠지만, 100X200㎝ 정도로 크게 뽑은 사진들이라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사진을 본다. 십중팔구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나온다. 구체적인 대상을 찍어 관객과 소통하는 장르가 사진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한 발짝 다가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툭툭 튀어나온다. 어두운 극장에서 조금씩 동공이 열리면서 형체가 드러나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절집 처마의 단청과 풍경, 그리고 바위가 보이는 사진은 가까이 다가가면 드러나지 않았던 바위의 움푹 팬 질감이 드러난다. 멀리서는 신발장과 신발만 보이던 사진도 가까이 가면 신발장의 얼룩이 드러난다. 일주문을 지나 절로 올라가다 만나는 대나무와 낮은 담장을 찍은 사진에서는 낮에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던 설법전의 문양이 선명하게 보인다. 새벽기도 나가는 주지스님의 뒷모습과 어렴풋한 달빛을 찍은 사진은 한참을 봐야 창살과 연등이 그 형체를 드러낸다.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내가 아는 것에 대해 이상일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다. 이상일 사진전은 10월 31일까지 부산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051-746-0055.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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