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육식동물의 비애

  • 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 이현석 경성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입 속으로 들어갈, 육즙이 돋는 고기를 보면서 인간과 죽은 동물에 대한 비애감을 느낀다. '동물아 미안하다'란 말과 함께. 부산일보 DB

12월의 식당은 부산하다. 망년회 자리에서나 만나게 되어버린 정든 얼굴들이 한 해 동안 모아 둔 사연들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설익은 고기를 성급하게 뒤집는데 갑자기 몇 년 전 작고한 한 문학평론가가 떠올랐다. 그는 살아 생전 유일하게 남긴 저서의 머리말을 "나무야 미안하다"는 말로 끝맺었다.

평론가는 자신의 평생 작업이 그것을 책으로 묶기 위해 잘려나간 나무 한 그루의 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평론가의 겸양이 지나치다 생각했다. 지나친 겸양은 오히려 자기 작업에 대한 자부심을 은근히 내비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오늘 나는 불판 위에서 몸을 뒤트는 고기가 안쓰럽다. 조금 있으면 그것은 식도를 통과하여 내 체세포가 되고, 대뇌 회백질부를 오가는 정보가 되고, 입에 고인 침이 되고, 발언이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엉뚱한 낭비인가! 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은 나를 위해 죽은 소나 돼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설혹 인간 세계에 얼마간 의미를 갖는다 할지라도 소나 돼지의 세상까지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모르긴 해도 그들의 삶을 조금은 더 각박하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므로 특별하다고 한다. 지구상의 동물들 중 반성을 할 수 있고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의 정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구를 대표하여 행동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다른 생물을 살육하고 섭취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의 생물학은 이러한 주장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일 뿐임을 입증한다. 문명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예컨대 침팬지 같은 동물은 인간 못지않은 자의식과 이타심, 협동심을 갖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는 모든 동물의 유전자가 98% 이상 동일함을 보여 준다. 

이 현 석

경성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진화는 더 개선된 형태의 우수한 동물이 출현하는 과정이기보다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과정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진화 과정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30억년 이상을 살아남은 박테리아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박테리아가 근자에 들어 우연하게 결합하고 분해하여 만들어낸 변이체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동물의 권리'에 대한 반대 발언은 강력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인류 문명이 동물은 고사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적절한 예의를 갖추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 앞에서 '동물의 권리'를 입에 올리는 것은 자칫 한가한 자의 지적 허영심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또한 어렵사리 '동물의 권리'를 고수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인간이 애초에 동물이나 식물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기가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고한 평론가가 그리운 나는 육즙이 뚝뚝 돋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물어 본다. 그리고 그와, 나와, 죽은 짐승에 대하여 비애를 느낀다. 이것은 '인간적' 감정일까?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