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현실,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
축사 너머에 이물질처럼 박힌 '공'은 미군 군사시설 '레이돔'이다. 사진가 노순택은 '얄읏한 공'이라 이름을 붙였다. 소의 눈망울이 '생뚱맞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진제공=고은사진미술관저기 화면 한 쪽 구석에 뭔가 있다. 눈에 자꾸만 거치적거린다. 숨막힐 듯 빼어난 자연 풍경 뒤로 둥글고 허연 공 모양의 것이 숨어 있다. 나뭇가지에 둥싯 걸린 통통한 보름달을 닮았다. 보름달처럼 큰 것만도 아니고 숲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추수 끝난 넓은 들판 뒤에도, 골프장 저 너머에도, 축사에서 여물 먹는 소의 등 뒤에도 어김없이 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그것이 불편하다. 대체 무엇일까.
노순택 사진전, 3월 28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얄읏한 공' 시리즈·정치적 풍경 등 70여점 전시
"사진 한쪽 구석에 허옇게 박힌 그것은 달도 아니고 공도 아닙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은 자신의 사진 속 정체불명의 것을 가리켜 "바로 미군 공군기지의 군사 시설 '레이돔'"이라고 했다. 작가가 여기에 붙인 이름은 '얄읏한 공'.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각도에 따라 레이돔은 밤하늘의 달이 되었다가, 골프장의 골프공이 되었다가, 전경들이 머리로 노는 애드벌룬이 된다. 참 야릇하다.
"'얄읏'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지요. '야릇'이 있을 뿐입니다. 그 뜻을 가져와 살짝 비튼 낱말이에요. 그 물체가 얼마나 '야릇'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작가가 레이돔을 좇아 카메라를 들고 달려간 곳은 경기 평택 팽성읍 대추리의 황새울 들녘. 레이돔은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미군기지가 확장되면서 삶의 터전을 떠났다. 커다란 돔 속에는 고성능 레이더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의 사진은 레이돔과 이곳 주민들의 삶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한국사회의 분단 자취, 모르는 새 스며든 정치적 폭력, 은폐된 채 지속되는 주민들의 아픔. 그의 사진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사유가 어른거린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은유적이면서도 날카롭다.
아픈 현실을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하는 그의 사진들을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이 기획한 노순택 사진전 '성실한 실성('lunatic fidelity)'이다. 제1전시관, 카페전시관, 지하전시관 등 3곳에 나눠서 총 70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얄읏한 공' 시리즈를 포함해 정치적 풍경의 배후를 생각해보게 하는 '배후설, 메가바이트산성의 비밀', 사진 찍는 행위의 본질을 묻는 '조류도감' 연작 등이 소개된다. '얄읏한 사진'들이다. ▶노순택 사진전=고은사진미술관, 3월 28일까지. 051-746-0055.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