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23년 만의 시국미사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화의 성지였던 명동성당에 공권력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나서서 공권력을 투입하려면 처음엔 당신을 잡아가고, 당신 뒤의 신부들을 잡아가고, 수녀들을 잡아가고, 그 다음에 학생들이 있으니 잡아가라고 말했던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10일 서울 명동성당 본당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천주교 프란치스코회 윤종일(54) 신부가 들려준 '6월 항쟁' 회고다. 명동성당 본당에서 23년 만에 '시국미사'가 열렸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가 진행한 이날 미사엔 사제와 신도 등 5천여 명이 참석했다. 본당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신도들은 꼬스트홀과 본당 앞마당에서 전광판을 보며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마친 뒤에는 사제·수도자를 포함해 모두 5천5명이 참여한 '4대강 사업중단 촉구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대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우려"라며 "그 강가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일은 우리 신앙인들의 몫이며 의무이자 소명"이라고 주장했다.
명동성당 시국미사를 바라보는 심경은 복잡했다. 억압받던 시절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던 명동성당은 1990년대 이후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일면서 시국미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명동성당이 다시금 시국미사라는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3년 만에 봉헌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국미사'라는 상징적 의미가 그것이다.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죽어가는 강과 그 속의 뭇 생명들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윤종일 신부의 말은 그래서 잊히지가 않는다. 부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은영 멀티뉴스팀장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