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야 놀자] 필름 사진 찍는 박유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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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의 순간 포착 못 잊어"

한 컷 한 컷 찍는 필름 사진을 통해 나 이외의 것과 교감하면서 삶을 천천히 성찰하고 변화시키고 있다는 박유영 씨. 그의 전직은 한 학원의 기획이사였다. 김경현 기자 view@

지난 6일 낮 12시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박유영 전 동래대신학원 기획이사가 보낸 것이다. '시간 나실 때 sisyphoto.tistory.com을 보시면 8일 만나서 이야기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박 이사가 알려준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어둠과 빛으로 빚어낸 한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줄에 입이 꿰어진 채 텅 빈 동공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생선이 말을 건넨다. '승천할 수 있을까?' 빛과 바람에 말라비틀어진 몸, 더 떨어질 것도 없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듯한 모습이 애잔했다.


지친 심신 달래려 입문
느린 소통과 성찰 '묘미'

난사 싫어 '필카' 고집
지난해까지 학원 이사로


지난 8일 오후 2시. 부산 동구 범일5동 일대 매축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박 이사를 만났다. "블로그 잘 봤습니다. 작품이 참 좋던데요." 그는 "뭘요"하면서 겸연쩍은 듯 웃었다. 매축지의 골목길은 1.5m 정도로 폭이 좁았다.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길에는 빨간 플라스틱 통, 장독, 연탄보일러, 세면기 등 다양한 물건이 나와 있었다. "참 정겹죠." 박 이사가 말한다. 매축지를 드나든 지 6년 정도 됐단다. 처음 사진을 찍으러 왔을 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주민도 있었지만 지금은 막걸리 한 잔 하는 친숙한 사이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손때 묻은 정물과 오랜 기억의 흔적을 붙들고 있는 노인을 찍는다. 그는 "삶의 애환, 집착, 그 연세에도 아직 놓지 못하는 희망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라고 말했다. 노인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박 이사가 카메라를 잡게 된 계기는 이렇다. 지난해 11월까지 그는 동래대신학원 기획이사로 활동했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대입 수험생의 진로 상담을 했다. 일은 힘들었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마흔 무렵인 2000년,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잡은 것이 카메라다.

먼저 사진 이론가 바버라 런던의 '사진 입문'이란 책을 사 읽고 사진을 찍으며 기초를 닦았다. 2003년 3월에는 인터넷 라이카 클럽에 가입했다. 당시 회원은 3천여 명. 인터넷에 오른 사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도 거의 매일 사진을 올렸지만 댓글 하나 없었다. 아직 실력이 모자란 것일까? 의구심을 가졌을 때 서울 회원이 전화로 일러줬다. "박 선생님 필름 사진이라도 후보정은 해야 합니다." 박 이사는 필름을 스캔해 먼지도 하나 지우지 않고 사이트에 사진을 올렸던 것. 화질이 떨어지니 댓글이 달리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렇게 사진을 하나씩 알아갔다.

한 때는 라이카 클럽에 올린 작품이 좋은 사진으로 선정되면 즐거웠고 그렇지 않으면 우울했다. 좋은 사진에 선정될 작품을 찍는 함정에 빠지기도 했다. 3년쯤 그런 생활을 하다가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바꿨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자신의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지만 그는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고집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피사체와 교감 없이 난사를 하게 되는 게 싫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 하루 평균 300∼400컷을 찍는데 필름 카메라로는 50컷 정도만 찍어요. 할머니를 찍으려면 적어도 3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정물을 찍을 때도 먼저 제 감정을 이입하죠.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함은 이런 소통을 방해하더라고요." 의외성과 기다림이란 미학도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다. 그는 현상을 기다리는 30분이 설렌다고 했다. 특히 그는 라이카 카메라를 좋아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찰칵하는 기계음이 강하다. 피사체를 놀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이카는 그렇지 않단다. 한 컷을 찍고 필름을 돌리는 짧은 여백도 라이카의 매력이다. 그는 1930∼1960년에 생산된 라이카 카메라를 10대(렌즈 25개) 정도 갖고 있다.

사진은 흑백 위주로 찍는다. 박 이사는 "컬러로 찍으면 색에 현혹돼 제가 찍고 싶은 걸 놓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사물의 본질보다는 색에 이끌린다는 말이다. 사진에 매달리다 보니 최근 인터넷 라이카 클럽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올린 회원(4천여 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축하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동호회 전시회도 여러 번 참여했고 사진과 글을 엮은 책도 낼 예정이다. 인터뷰 끝에 사진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하루에 2번 정도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는 순간이 소중하고 즐겁다"라고 말했다. "낯가림이 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이 사진을 통해 변했다"라고도 했다. 사진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고 느리게 변화하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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