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름다워 길을 걷다] ① 우간다 부뇨니 호수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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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상처 이기는 해맑은 아이들, 아프리카 미래는 환했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깊은 부뇨니 호수는 보이는 모든 것이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한때는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렸던 우간다는 1900년 부간다 왕국 시절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가 1960년대에 독립했다. 이후 줄곧 종족 간의 분쟁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1971년에는 쿠데타로 집권한 이디 아민의 독재가 시작된다. 우간다는 이디 아민이 물러간 후에도 여러 번의 정권교체와 이웃나라 르완다의 내전, 그에 따른 학살로 얼룩진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990년대까지도 일부 지역은 내전의 영향 아래에 있어서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지금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낯선 외부인의 방문을 꺼려할까 두려웠다. 다행히 지금까지 만났던 우간다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고, 특히 시골의 아이들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물론 수도 캄팔라나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성가실 정도로 따라붙는 '삐끼'들이 좋게 간직하고픈 이미지를 때때로 훼손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상업적 투어리즘이 만연한 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비단 아프리카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
카누·자전거 여행자들 많이 찾아

해외 봉사단체가 만든 학교·카페엔
얼룩진 역사 대신 희망의 씨앗 자라

우간다에는 여러 개의 크고 깊은 호수가 있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빅토리아 호수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 맞닿아 있다. 르완다 접경 카발레시에 있는 또 하나의 호수가 부뇨니 호수(Lake Bunyoni)이다.

부뇨니 호수는 보이는 모든 것이 말 그대로 그림엽서이다. 우간다의 5천 실링짜리 화폐에도 인쇄되어 있을 정도다. 우간다의 남서부 르완다와의 접경 도시 키소르와 카발레 사이에 있는 부뇨니 호수는 수심이 40∼900m나 되는, 아프리카에서도 두 번째로 깊은 호수이다. 호수에는 29개의 섬이 있다. 호수 주변은 해발 2,000m 정도로 낮에도 덥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캠프가 많아 카누와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간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의 호스텔에서 만난 이스라엘 배낭객의 강력한 추천으로 가장 저렴하다는 포스트 버스(Post Bus)를 타고 무려 8시간을 달려 카발레에 도착했다. 포스트 버스는 말 그대로 우체국에서 운영하는 버스라 카발레까지 한 번에 가지 않고 지나치는 도시의 우체국마다 세워 우편물을 배달했다. 이게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웬만하면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캄팔라의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게 낫다.

부뇨니 호수는 카발레에서도 9㎞ 이상 떨어져 있다. 월·금요일에만 정기 미니버스가 운행되고. 그렇지 않으면 값비싼 스페셜 택시나 히치하이킹을 각오해야 된다.

부뇨니 호수 주변에는 두 개의 괜찮은 캠핑장이 있다. 하나는 오버랜드 캠프. 다른 하나인 자스페르 캠프는 부뇨니 호수 안에 있는 섬 중의 하나를 캠핑장으로 만들었다. 캠핑장은 개인용 텐트부터 시설 좋은 방갈로까지 다양한 가격으로 여러 가지 캠핑용 물품을 대여한다. 텐트만 빌리면 따로 침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나 위생적인 측면에서 자기 침낭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권하고 싶다. 아프리카의 밤은 예상 외로 추울 때가 많다.

도착한 날 밤 오버랜드 캠프에서 침구를 제공하지 않는 가장 싼 텐트를 빌려 미리 가지고 간 침낭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은 가랑잎 같은 카누에 의지해 30여 분을 노을 저어 자스페르 캠프에 도착했다. 좁은 배 안에서 몹시 긴장한 탓인지 카누에서 내릴 때 다리가 저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자스페르 캠프에 갔건만 어찌된 일인지 캠프를 운영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자스페르 캠핑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부푸카 초등학교였다. 카누를 조종하던 소년에게 배를 돌려 부푸카 초등학교로 가자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난밤 묵었던 오버랜드 캠프에서 카누로 10분 거리. 굳이 힘겹게 카누를 타지 않고 걸어서도 2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여기서 잠깐. 이곳 우간다 토속어로 '창문'을 뜻하는 '에디리사(Edirisa)'라는 말을 알고 가자. 슬로베니아인이 조직한 자원봉사단체인 '에드리사'는 카발레를 중심으로 호수 근처에 초등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창문'을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다시 세상이 그 '창문'을 통해 아프리카를 바라본다는 상호교감적인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그곳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카페에는 상징적인 의미로 바로 그 '창문'을 만들어 두었다.

부푸카 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인근 도시 카발레에 다니러 가고 슬로베니아인 이루마 혼자서 에드리사를 지키고 있었다. 이루마는 방학이라 교실에 학생들은 없지만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 등 소품으로 꾸며진 교실을 안내하고 그들이 여기서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하룻밤을 자원봉사자들이 사용하는 도미토리에서 지낼 수 있게 허락해주었다.

그들도 이곳에서는 잠자리만 제공받고 음식이며 나머지 모든 것들은 직접 돈을 내고 이 카페에서 사서 먹는다고 했다. 창문 카페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기른 고구마, 감자, 스파게티 같은 기본적인 식단들이 제공되는데 나름대로 먹을 만했다.

다음에 이곳을 지나갈 여행객은 카페 에드리사에서 아이들이 손수 만든 그림엽서라도 기념으로 사 가기를 바란다. 식사 후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해 줄 일도 없고 해서 모처럼 나타난 동양인을 '재키 찬'이라 부르며 따라다니던 동네 꼬마들을 모아 태권도를 가르친답시고 하루 종일 청룽(성룡) 흉내만 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밤이 되었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밤하늘의 별을 세며 풀벌레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만 들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할 것이 없었다.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기나긴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그곳을 떠났다. 점점 멀어져가는 부뇨니 호수를 뒤로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곳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람들. 다시 이곳을 오게 된다면 그땐 꽤 오래 머물게 되리라!"

글·사진=이길·자유여행배낭객 strada@hanmail.net



길(46·사진) 씨의 본명은 이상욱이다. 평생 '자유배낭여행객'을 꿈꾸며 대학교 때부터 20년간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씨는 마흔이 넘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주로 혼자서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가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40개국 이상을 다녔다. 현재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외국 배낭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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