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된 고인돌
'권력의 상징' 세월과 함께 주변과 공존
권태균의 '전남 광양'. 고인돌이 담쟁이 덩굴로 덮여 있다. 고은사진미술관 제공지구상에 존재하는 고인돌의 수는 대략 6만여 기. 그 중 남한에만 3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고, 북한에 2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다고 한다. 이 중 2천여 기가 밀집되어 있는 고창의 고인돌과 화순, 강화의 고인돌은 2000년 11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고은사진미술관에 가면 우리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고인돌 사진을 만날 수 있다. 5월 15일까지 열리는 사진작가 권태균의 '침묵하는 돌' 전시.
작가가 고인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전남 고흥반도의 끝자락 작은 마을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우연히 황토 언덕길 양옆에 군락을 이룬 고인돌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인돌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 전시는 그 중에서 선별한 흑백과 컬러 사진 50여 점.
이끼가 끼거나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고인돌에서부터 조각난 고인돌, 심지어 쓰레기에 묻혀 있는 고인돌까지 다양하다. 마늘밭에서 마늘을 캐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고인돌 옆에서 낮잠 자는 모습도 있고 봉분이 있는 현대식 무덤과 고인돌이 나란히 함께 있는 모습도 있다.
사진 속 고인돌은 더 이상 인공조형물로서 당대의 위용을 가진 권력자의 무덤이 아니다. 되레 위용은 사라지고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무참히 훼손되거나 초라하게 남아 있는 고인돌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이 강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 고인돌은 단지 무덤이나 제단, 상징을 떠나 주변의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자연으로 우리 곁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사진 가운데 고인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바위 모습도 있다. 그렇다고 '이게 고인돌 맞아'라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작가는 각 지역 문화유적 지표조사 자료와 학자들의 고증을 받아 고인돌을 확인한 후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는 "향후 중국 땅에 있는 우리 고인돌도 사진에 담을 것"이라 했다. 요동반도부터 만주 지역에 펼쳐져 있는 고인돌의 분포지는 바로 초기 고조선의 옛 강토와 일치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고인돌을 단순히 역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그는 "내가 찍은 수백 수천 개의 고인돌 사진은 역사적 의미가 함축돼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의 공존이다. 고인돌은 항구성 속에서 침묵하는 돌이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고 했다. 요컨대, 돌이면서도 돌이 아니고 문명으로 조성되었지만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제 자연으로 회귀한 고인돌의 모습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그의 작품 속 고인돌은 응축된 역사성 안에서 자연 그 자체가 되어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 문명과 묘한 어울림을 이루고 있다.
▶침묵하는 돌=5월 15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