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은' 산청곶감
"애써 깎아 놓은 감이 곰팡이가 피며 물러 떨어져 억장이 무너집니다."
11일 오전 지리산 명품 산청곶감 산지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동신마을. 임모(50) 씨는 농장에 파 묻기 위해 트럭에 가득 실어 놓은 홍시가 된 곶감을 뒤적이고 있었다. 건조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야 하지만 곰팡이 때문에 도중에 홍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마을의 대표적 곶감 생산농가인 임 씨는 지난달 말부터 곶감용 원료감인 고종시 7만개를 인부들을 고용해 깎은 뒤 건조장 천정에 매달았다.
최근 이상 고온에 곰팡이 발생
"곶감 5만 개 중 절반 이상 폐기"
올 생산량 40% 정도 줄 전망
하지만 10여일 만에 모두 물렁물렁해지며 떨어지고 말았다. 이달 초부터 낮기온이 최고 25도까지 오르는 더운 날씨가 이어진데다 잦은 비에 높아진 습도가 원인이다. 곶감 생산용 감은 낮 기온이 10도를 넘어서면 안 된다.
임 씨는 "밤기온이 싸늘할 정도로 차고, 청명하고 건조한 날씨가 한 50여일 되어야 곶감이 되는데, 올해는 날씨 때문에 이 마을 곶감 농가 대다수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임 씨도 올해 고종시 원료감 값 3천500만 원을 비롯해 인건비 등 모두 6천만 원 이상을 날리게 됐다.
지난달 말 원료감을 깎은 뒤 건조대에 매다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던 인근 반천마을 김모(63)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깎아 놓은 감이 연일 물러져 건조대 아래로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의 부인은 "매달아 놓은 감 5만개 중 벌써 절반 이상이 떨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남명기념관이 있는 사리 양당마을의 조모(55)씨도 지난달 감 7만개를 깎았지만 벌써 대다수가 떨어져 버렸다. 감 깎는 시기를 늦추기 위해 바깥에 쌓아 놓은 원료감 상당수도 이미 홍시가 돼 폐기해야 할 상황이다.
조 씨는 "지난해엔 느닷없이 일찍 내린 서리 때문에 나무에서 미쳐 따지 못한 원료감이 상당수 동해를 입었는데, 올해는 늦가을 한여름 같은 날씨 때문에 곶감 농사를 망쳤다"고 날씨를 원망했다.
이상고온 현상과 궂은 날씨가 지속되면서 지역 상당수 곶감생산 농가들은 감 깎는 작업을 멈추고 원료감을 저온저장하는 등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묘안을 짜내고 있다. 천평리 류재동(67) 씨는 "따뜻한 날씨 때문에 곶감 건조가 안 될 것 같아 다소 비용이 들어도 날씨가 추워질 때까지 원료감을 저온저장고에 넣어 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매년 12월 초순께부터 본격 출하됐던 지리산 산청곶감은 올해의 경우 출하시기가 상당히 늦어질 예정이다. 생산량 역시 감소하면서 가격도 크게 오를 전망이다. 서봉석(50) 산청곶감연합회장은 "지리산 자락 1천100여 농가들이 매년 30만여접(1접은 100개), 350여억 원 어치의 곶감을 생산해 왔는데 올해는 생산량이 40% 가량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선규 기자 sunq17@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