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를 직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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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은 손승현의 '국가의 안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흑백 사진 속 노인들의 표정은 대부분 무표정하다. 웃음이라곤 쉽게 찾을 수 없는 얼굴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동작을 하고 있지도 않다.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사진작가 손승현(40)이 카메라에 담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습이다.

분단된 한국은 비전향 장기수라는 독특한 인간 집단을 낳았다. 남파공작원과 빨치산 출신을 주축으로 10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평균 31년 4개월이었다고 한다.

비전향 장기수·강제 징용 등
렌즈에 담긴 굴곡의 역사현장


한국의 현대사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분단, 전쟁, 학살,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어디 그뿐이랴.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격랑을 숨 쉴 틈 없이 겪었다. 특히 그 한가운데 청룡열차보다 빨랐던 압축적 근대화도 있었다. 하지만 압축적 근대화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버렸다. 인권은 뒷전이었고 자유나 민주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제대로 볼 줄 몰랐고 제대로 들을 줄 몰랐다. 지나가 버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뭐 하나 제대로 '직시'하는 법을 잊어버렸다고나 할까.

하지만 치열한 작가 정신은 굴곡 많은 우리의 현대사를 놓치지 않았다. 유난히 울퉁불퉁했던 우리의 역사에서 직시해야 할 게 어디 한두 가지일까 마는 여기 사진작가들은 나름 우리 현대사의 굴곡 많은 일면을 불러냈다. 고은사진미술관 신관에서는 다음 달 23일까지 이들이 바라본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직면'(直面)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권순관, 김옥선, 변순철, 손승현, 이강우, 이재갑 등 작가 6명이 참여한다.

이강우(46)의 탄광촌 사진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가 다 파먹고 떠나버린 스산한 근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가 찍은 철암천변의 시멘트 건물 어디에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아직도 탄은 엄청나게 남아 있지만, 경제성이 없어져 폐광이 되어 버린 곳이다. 비어 있는 곳, 그런데 되레 무겁다,

강제징용 현장을 담은 이재갑(45)의 사진은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 사진의 설명을 보지 않았다면 바다 위로 삐죽이 나온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저 탄광의 배기구인지 알 길이 없다. "폭풍우 치던 어느 날 이 배기구로 물이 넘어 들어와 해저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 183명(이중 조선인은 134명)이 고스란히 수장되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 기막힌 사연을 그저 사진만 보는 관객들이 어찌 알 수 있으랴.

손승현이나 이재갑, 이강우가 내놓은 작품들은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가들은 식민지 지배와 분단, 그리고 산업화의 첨예한 단면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김옥선은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낯선 이방인들의 일상과 그 이면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권순관과 변순철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면을 렌즈에 담았다.

한편, 고은사진미술관은 전시 기간 중 두 차례에 걸쳐 참여 작가와 전시 작품을 평가하는 기회도 가진다. 다음 달 3일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동안 부산대학교 이왕주 교수가 '사진, 혹은 철학의 실천'을 주제로, 이어 10일에는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가 '직면을 보며'를 주제로 강의한다. ▶'직면'(直面) 전=부산 해운대구 우동 고은사진미술관 신관. 051-746-0055.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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