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지" 사진가 정인성의 생활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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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의 '충무동'(1949년 작).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사진가 정인성(1911~1996년). 그는 순수 사진을 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평생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순수 사진에만 일생을 바친 선비적 작가였다. 부산 사진의 1세대로 1930년대 후반부터 부산에서 활동하며 고(故) 임응식 등과 함께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주도했으며, 부산은 물론 한국사진의 텃밭을 일구었던 사진가였다. 후배 사진가들은 "정인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부산사진을 논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다.

고은사진미술관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정인성, 부산 사진의 여명' 전을 마련했다. 이상일 디렉터는 "이번 전시가 지난해 미술관 신관에서 전시했던 '부산사진의 재발견-기억과 트라우마' 전에 이어 부산 사진을 조명하는 후속 기획의 첫 번째 시도"라 했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정인성을 시작으로 부산 사진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진가들을 차례로 조명할 계획이다.

부산 1세대 사진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
1930~1970년 당대 생활상·아픔 고스란히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 150여 점으로 모두 흑백사진이다. 그는 표준렌즈가 달린 독일산 카메라로 평생 흑백사진만을 찍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시 작품은 1~4부로 나눠 그의 사진관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1부는 '발견의 예술, 빛의 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그가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빈티지 작품들을 전시한다. 요컨대, 1952년 작 '부산근교'는 허물어져 가는 판잣집을 배경으로 집 앞에서 빨래하는 할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한 장이 당대의 아픔을 웅변하고도 남는다.

2부에서는 정인성을 회고한다. 그가 남긴 유품과 각종 자료가 작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생전 사용하던 카메라, 그와 관련된 신문 스크랩, 강의록, 작가의 일상을 담은 사진물도 보인다. 사진을 놓고 여러 번 트리밍한 흔적도 있다. 후배들에게 "트리밍은 어디까지나 찍은 작가의 몫"이라고 늘 말해왔던 작가의 실천적이면서, 치밀하고 단정한 풍모를 이곳에서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3부는 정인성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생활주의 리얼리즘', '조형적 리얼리즘', '사물의 힘'으로 구분해 보여줌으로써,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천막으로 집을 만든 부산 용두산 공원(1952년 작)이나 낙동강 강가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1956년 작)을 담은 사진은 당대의 생활상과 호흡을 함께하는 생활주의 리얼리즘으로 손색이 없다.

1948년작 '충무동'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충무동의 긴 골목길을 한 화면에 담은 이 작품은 화면의 흑백 안배와 구도가 멋스럽다.

별관(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에서는 정인성과 함께 '부산광화회'에서 활동했던 사진가들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부산광화회는 부산에서 한국인 주도로 만든 최초의 아마추어 사진가 단체로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정인성은 경남 양산 태생으로 서울 휘문고보 5학년 재학 시절 처음 사진을 접했다. 이어 1935년 일본 동경사진학교를 졸업, 귀국해 울산에서 사진활동을 시작하다가 부산으로 이주해 1937년 부산여광사진구락부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했다. 타계할 때까지 줄곧 부산을 떠나지 않고 부산 사진계의 발전을 위해 부산대 동아대 등에서 후배 양성과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생전 그는 "사진은 사진만이 말할 뿐이며, 사진은 나의 호흡과 같다"고 했다. '사진으로 말하는 그의 호흡'을 직접 느껴보시라. ▶정인성, 부산 사진의 여명 전=3월 18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신관. 051-746-005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임응식 탄생 100주년 기념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 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사진의 여명기를 부산에서 함께 열었지만, 서울에서 주로 활동한 임응식과 부산을 지킨 정인성. 두 선구자가 세상에 온 지 100주년이 되는 시점에 그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것은 한국 사진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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