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거리 두고 바라본 삶의 공간
생활과 풍경이 결합된 배동준의 사진. 대저(1971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빨래하는 아낙네 옆에서 홀딱 벗고 노는 꼬마들, 줄줄이 세워진 구두를 뒤로하고 조는 구두닦이, 바닷가에서 칭얼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네…. 이젠 쉽게 만나기 어려운 1960~1980년대 우리네 삶을 담은 사진이 고은사진미술관 본관에 내걸렸다.
고은사진미술관이 부산 사진작가 배동준(77)의 흑백과 컬러 사진 60여 점을 모아 '근대적 풍경의 탐구'라는 타이틀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 고은사진미술관 신관에서 열린 '부산 사진의 재발견-기억과 트라우마' 전의 연장선이며, 그 후속 기획의 첫 시도였던 '정인성, 부산 사진의 여명' 전(2011년 12월)에 이은 두 번째 부산 사진작가에 대한 탐구다.
배동준은 부산 사진의 2세대 작가로 일컬어진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그는 임응식(1912~2001)과 정인성(1911~1996)의 영향을 받은 후기 리얼리즘 사진의 대표 작가로 주로 부산에서 활동했다.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중등교사양성소를 졸업한 배동준은 이듬해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인간가족'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접한 뒤 사진으로 방향을 틀고,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과 삶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클로즈업·심미성 최대한 배제
고은사진미술관, 배동준 작품전
그의 사진은 인간의 모습과 삶의 풍경에 집중하되 클로즈업이나 심미성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현실의 삶을 사진 프레임 속에 개입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 작업과도 구분된다.
경제성장이 국가적 목표였던 1970년대. 한국 사진은 산업화와 근대화로 점차 사라져가는 농촌의 풍경과 한국적 전통을 기록하거나 사회적 모순에 관심을 두는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새 국면을 맞는다. 하지만 부산은 임응식, 정인성 등을 중심으로 펼쳐진 생활주의 리얼리즘 운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시기 부산 사진은 인간의 모습과 삶의 풍경에 천착하면서도 저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리얼리즘 사진이 주를 이뤘던 것. 배동준 역시 이런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서울대에서 임응식 선생의 강의를 들었고, 부산에 내려와 교사가 돼 부산대 3학년에 편입했는데 3, 4학년 때 정인성 선생의 강의를 들었죠." 생활주의 리얼리즘 운동의 선구자였던 두 주역이 모두 그의 스승이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그의 사진은 항상 대상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도, 초가집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도, 아이에게 젖 먹이는 엄마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제가 주목한 것은 압도적인 풍경보다는 정서적 교감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삶의 공간 그 자체였어요." 작가가 현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배동준의 작품은 20세기 풍경 사진의 변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흑백의 자연풍경과 삶이 담긴 사회풍경, 그리고 컬러로 표현되는 풍경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배동준은 흑백사진을 고수하다가 1960년대 말부터 컬러사진을 병행해서 찍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 풍경 사진을 컬러로 찍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컬러사진은 색을 개입함으로써 톤과 명암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예술성이나 깊이가 없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은사진미술관 이상일 디렉터는 "흑백사진으로 어느 정도에 반열에 올라선 그가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을 병행해서 작업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연풍경의 빛깔과 대비되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옷과 담요 등 다양한 생활 소품은 흑백사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각적 정보를 준다"고 말했다.
배동준의 풍경 사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는 삶의 공간이나 일상의 장소를 선택해 소박하지만, 힘이 있는 풍경을 담는다. 배동준의 사진은 생활과 풍경을 결합함으로써 리얼리즘 사진과 풍경 사진의 경계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로 풀어내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 냈다. ▶배동준, 근대적 풍경의 탐구=9월 2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고은사진미술관 본관. 051-744-3924.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