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락원 고향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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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의 '전원일기-시골학교편' 연작.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고향이란 단어엔 아련한 향수가 묻어 있다. 그곳엔 파괴되지 않은 자연과 순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고향은 어떨까? 고향이 간직한 순수성은 사라지고, 개발의 논리에 의해 파괴된 공간으로 다가올 뿐이다.

고은사진미술관 신관에서 열리는 '실락원(Paradise Lost)-고향의 상실과 군소도시의 탄생' 전은 급속한 근대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개발 논리에 의해 무분별하게 변형되거나 그 고유성이 퇴색한 이 시대 군소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지나온 근·현대를 되돌아보는 전시다.

이상일 고은사진미술관 디렉터는 "고은사진미술관 본관에서는 배동준 작가가 70년대 우리의 고향을 담았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다. 현재의 사진가들은 고향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담아낼까 궁금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고정남, 구성수, 김지연, 김윤호, 안수영, 양재광, 이민규, 최광호 등 8인의 사진작가가 참여했다.


'실락원-고향의 상실과 군소도시의 탄생' 전

잃어버린 근원의 향수, 근·현대 되돌아보기


'진달래' 시리즈를 선보인 고정남에게 고향은 낙원과 실락원의 중간 접점에 있다. 여전히 아련한 고향의 정취는 진달래로 간직되고 있지만, 개발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사진도 나란히 걸어 놓았다. 진달래가 순수함을 말한다면 콘크리트는 파괴와 폭력을 이야기한다.

이민규는 지금의 고향 현실을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의 모습을 통해 은유적으로 펼쳐 보인다. 작가는 충청도 일대의 초등학교를 섭외해 그 학교 전교생을 붉은 카펫 위해 줄지어 세웠다. 제목은 '전원일기'. 작가는 "TV 드라마 제목에서 빌려 온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진 속엔 전원의 낭만이라곤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한 발 더 나가 구성수는 개발의 실체가 남긴 흔적을 눈으로 확인시킨다. 어찌 보면 그의 사진 속에는 이민규의 '전원일기'가 머지않아 맞이할 미래처럼 보이는 사진도 있다. 세종대왕만이 지는 해를 맞는 폐교의 모습처럼 말이다. 을씨년스러운 풍경만 남은 산업역군들의 도시, 탄광촌 태백시 철암의 모습도 담았다.

김윤호는 군소도시에서 벌이는 각종 선발대회를 통해 획일화·캐릭터화 한 고향의 모습을, 안수영은 허물어져 가는 풍경을 빠르게 대체하는 개발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사진에서 보여주는 오늘의 고향은 끊임없이 개발되는 고향이나 캐릭터화 된 고향의 모습이 많다. 더는 가슴 뛰는 바다도, 미치도록 그리운 흙내도, 잔재미로 가득 찬 구멍가게를 만날 방법도 없다. 70년대 고향과 비교하면 슬프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고향을 지키자고 마냥 소리 높일 수도 없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한 작가는 '살랑거리며 잦아드는 전원의 저녁/ 한 담배 가게가 장미처럼 향기를 흩뿌렸네/ 현관들이 있었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었네/ 단지 길 건너 보도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뿐'이라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애틋하게 기억한다. 우리의 수많은 도시도 아르헨티나 작가의 시처럼 애틋하게 기억될까? 파괴되고 해체되고 철거된 자리엔 기억마저 사라졌다. 고향을 상실한 망향가라도 불러야 할까? ▶'실락원(Paradise Lost)-고향의 상실과 군소도시의 탄생' 전=9월 16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고은사진미술관 신관. 051-744-3933.

정달식 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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