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관·흑룡포… '황가의 기품' 눈으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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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아들 의왕이 썼던 원유관.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조선왕실의 각종 주요 의식을 기록한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왕실 생활사의 파노라마다. 1898년 10월 12일,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다. 조선이 왕의 나라에서 황제국의 나라로 바뀌자 주요 의식도 훨씬 많아진다. 고종은 명성황후를 황후로 책봉하고 황제국의 예로 국장을 치렀으며, 왕세자와 왕세자비를 황태자와 황태자비로 책봉했다. 또 선대 국왕을 황제로, 두 아들을 '친왕'으로 격상했다. 그중 고종 황제의 두 아들이 친왕으로 격상하는 책봉 의식과 흥선대원군, 부대부인 민씨, 완화군 의왕비 김씨 등이 왕이나 왕비로 추봉 또는 책봉되는 의식을 기록한 귀중한 의궤(儀軌)가 부산에서 전시되고 있다.

'의왕, 영왕 책봉의궤'와 '추봉책봉의궤'다. 의궤란 각종 의식을 어떤 순서에 따라 어떻게 치렀는지를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림과 텍스트로 정리한 책을 말한다.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궁중유물 전시회

의왕비 기증품 통해 대한제국 황실사 엿보기



'의왕, 영왕 책봉의궤'는 1904년 7월, 고종 황제의 두 왕자인 강(堈)과 은(垠)이 황제국의 법도에 맞게 친왕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두 왕자를 책봉했다는 내용과 채색 그림, 영왕의 책인을 궁으로 전달하는 반차도(나라의 의식에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와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 등이 실려 있다.

'추봉책봉의궤'는 1907년, 순종 원년,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 완화군 의왕비 김씨를 추봉 또는 책봉했던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두 의궤는 대중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 양맹준 부산박물관 관장은 "지난해 프랑스나 일본에서 돌려받은 의궤와 동급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해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은 다음 달 31일까지 박물관 2층 민속실에서 개관 30주년 기념 '황가(皇家)의 기품(氣品)-천주교와 황가의 만남' 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엔 이 두 의궤를 비롯해 고종 황제의 아들 의왕(1877~1955)과 의왕비(1878~1964), 고종 황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1820~1898), 순종 황제의 비인 순정효황후(1894~1966)가 사용한 궁중유물 9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대한제국 황실과 천주교는 어떤 인연이 있기에 '만남'이란 제목으로 전시할까?

박물관 관장 배선영(노엘라) 수녀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왕과 의왕비는 말년에 천주교에 귀의했다. 의왕은 가톨릭을 박해했던 조부 흥선대원군이 수만 명의 천주교인을 사형시킨 것에 대한 참회의 성격으로 1954년 '비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의왕비 역시 같은 해 천주교에 귀의해 세례(세례명 마리아)를 받았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와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그 박해와 화해의 중심에 조선 황실이 있어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유물은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의왕비가 지인을 통해 기증한 유물들 중심으로 대부분 이뤄져 있다.

전시장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 하나밖에 없는 의왕의 원유관(遠遊冠).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 후, 1900년 의왕이 왕으로 책봉될 때 머리에 썼던 관모다. 박물관 하신혜 학예사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에 통천관을 쓰고 있는 모습은 남아 있으나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원유관에 대해 국가 문화재 지정을 신청해 놓고 있다.

의왕이 입었던 의복인 '흑룡포'도 전시돼 있다. 의왕이 군에서 왕으로 책봉된 후 그 직위에 맞춰 원유관 등과 함께 갖추었던 의복으로 추정된다. 의왕비와 관련된 유물로는 원삼을 입은 의왕비 사진과 의왕비 세례식 사진, 세례식 사진 속에도 등장하는 지팡이 등이 전시돼 있다. 순정효황후 윤비가 입었던 여름용 당의(唐衣·궁중과 사대부 여인의 소례복)는 옷 전체에 수복(壽福)의 문자가 금박으로 처리돼 있다. 이밖에 흥선대원군의 친묵 글씨 등 다양한 궁중유물을 만나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전시 기간 매주 토요일 관람객들이 원유관을 만들어보는 체험 행사도 한다. ▶'황가(皇家)의 기품(氣品)-천주교와 황가의 만남' 전=10월 31일까지 부산 금정구 부곡동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입장료 성인 2천 원, 유치원 및 초·중·고 학생 1천 원. 051-583-2923.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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