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그때 그 늬우스] 처(妻)의 통문증(通門證) 갖고 태연(泰然)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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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一九의거 당시 「데모」 학생을 구타 치사한 「깡패」 신(申)정식(三一=일명 중길=서대문구 교북(橋北)동 五)이 十三일 상오 十시二十분경 서울형무소에서 탈옥했다. 신(申)은 四·一九 당시 시내 서대문(西大門) 이기붕(李起鵬)씨 집 앞에서 「데모」를 하던 경성전기공고(京城電氣工高) 학생 최(崔)기태군을 쇠망치로 머리를 때려 치사케 한 혐의로 구속된 자인데 아직 공판을 받지 않은 살인미결수이며, 탈옥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날 상오 十시 신(申)은 그의 처 이(李)옥자와 면회를 하면서 『면회가 끝나더라도 돌아가지 말고 면회소 부근에서 기다려라』고 일러놓았다. 면회가 끝난 후 신(申)은 일단 면회실에서 물러갔다가 직원의 감시를 피해 다시 면회실로 들어가서 근처에 기다리고 있던 그의 처를 안으로 불러들여 어린애를 받아 안고 「통문증(通門증)」을 어린아이의 손에 쥐인 채 형무소 문을 태연히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신(申)의 처를 구속하고 문초를 했던 바 지난 十二일 면회할 때 신사양복 한 벌을 차입한 것이 밝혀짐으로써 신(申)이 그의 처와 더불어 미리부터 탈옥을 계획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 1960년 10월 14일>

깡패 신정식이 탈옥한 사건이다. 신정식은 자유당 정권시절 조직폭력배 서대문파의 중간보스급으로 활약한 정치깡패였다. 4.19혁명 당시 시위를 벌이던 경성전기공고생 최기태를 구타, 살해한 혐의로 1960년 8월 20일 체포되었으나 두 달이 채 안 된 10월 13일 교도소를 탈옥했다. 아내와의 면회를 틈타 탈옥했는데, 통문증(면회표)을 가지고 교도소 정문을 유유히 빠져나간 것을 보면 교도소 경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만하다.

그러나 신정식은 10월 15일 탈옥 52시간 만에 다시 체포되었다. 서울 마포의 지인 집에 숨어 있다 경찰에 발각돼 이내 체포된 것. 그의 탈옥 목적은 자신의 범행을 증언한 동료 깡패 두 명에게 복수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차 구속된 신정식은 이듬해 군사정권에 의해 진행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61년 10월 19일 서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신정식은 정치깡패의 대부 이정재와 함께 사형당했다. 정광용 기자 ky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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