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③ 울산 우가포~나아해변
입력 : 2013-05-16 07:52:07 수정 : 2013-05-17 11:21:32
주상절리에 감탄 해산물에 군침 바다는 항상 열려 있다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S&T 그룹 직원과 가족들이 울산 북구 강동동 해파랑길을 지나고 있다. 3차 국토대장정 코스로 선택된 울산 우가포∼나아해변은 어디에서라도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다. 작은 어촌 마을의 정취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김병집 기자 bjk@해안누리 해파랑길은 문명과 자연의 경계이다. 길 좌우로 두 극단의 풍경이 존재하지만, 기실 우리가 걷는 길은 그 둘을 잇고 있다. 길이 없으면 화해가 없다.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3차 동해 우가포~나아해변 구간을 걸었다.
5월의 신록은 연초록의 세상으로 다가왔다. 바다는 걸음을 바꿀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색감의 '블루'를 뽐냈다. 주상절리 바위가 보여 주는 이색적인 풍경은 '여기 제주인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아이처럼 들뜬 사람들
우가포는 작은 항구다. 울산 북구 강동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물론 동해 바다가 마을의 앞마당이다. 슬픈 전설이 있다. 어미소를 판 아버지가 워낭만 부뚜막에 두었다. 아들 망이가 묻자 바다로 풀 뜯으러 갔다고 속였다. 망이는 송아지를 데리고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언덕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동네처녀들과 노느라 소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어느 날 바다에서 어미소가 걸어나오는 것을 본 망이가 어미소와 바다로 갔다. 망이도 어미소도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이 슬픈 전설은 누가 만들었을까? 예전에 동해 연안의 마을을 취재할 때 마을마다 관청의 착취가 심해 민초들이 난을 일으킬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가포도 그런 아픔이 있었을까? 전설은 슬펐지만, 마을은 아름다웠다.
해송은 자라면서 가지를 나눴다.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감싸는 형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금실송'이라 이름 붙였다. 그 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풍경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전설처럼.
 |
| 국토대장정 종주대원들이 3차 국토대장정 코스를 출발하기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병집 기자 |
이번에도 488명의 S&T 식구들이 국토대장정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흥겨워했다. 정자항에 들어서자 대게 삶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야, 오늘 카드 가져온 사람 있어? 난 깜박했네. 누가 가져왔니? 좀 빌려줘. 나중에." 도무지 게향에 마음을 뺏겨 꼭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회사 측에서 음료수와 도시락까지 모두 제공하니 방심(?)을 했던 모양이다.판지항에 도착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한창 미역을 다듬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할머니들이 한꺼번에 와락 대답했다. "제일 좋은 미역이지. 묵어 봐. 맛있어. 누가 귀 좀 잘라 봐! 빨리~!" 귀를 자르라니. 깜짝 놀랐는데 미역귀를 수북이 건넨다. 살아 있다. 길손에게 먹을 것을 나누는 정이 이곳 판지마을 어르신들에게 있었다.
■외로움도 수채화처럼미역귀는 입속에서 바다 소식을 전했다. 짭짤하고, 상큼하고, 떫고, 구수하고, 미끌했다. 생명의 기원이 바다라더니 미역귀 하나에도 온갖 맛이 다 숨어 있다. 제일 맛있는 건 그래도 어르신들의 정 맛이다.
바람이 많은 곳인가 보다. 해안길에 있는 포장마차는 모래 베자루로 꽁꽁 묶어 놓았다. 이 모래 베자루를 이겨낼 바람이 있을까. 바람이 더 세게 불겠지만, 사람들은 더 많은 베자루를 매달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엔 사람들이 예술을 입혀 놓았다. 강동 화암마을 초입의 작은 담벼락엔 이기철(?)이 썼음이 분명한,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바다는 항상 열려 있고 사람들은 가끔 마음을 닫고 산다.' 바다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얼마나 마음을 연 적이 있던가.
길은 이어졌다. 다시마가 자갈밭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사람 키만큼이나 긴 다시마가 수없이 누워 있는 장면을 보니 유영하는 물고기 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마는 제 몸을 말려 또 맛난 국물을 선사할 것이다.
기웃기웃 구경을 하다 보니 맨 꼴찌가 되었다. '꼴찌는 최평규 회장 차진데' 하고 보니 역시나 바로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나중에 식사 자리에서 들은 얘기이지만 최 회장은 "10년이 걸리더라도 국토대장정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걷는 뒷모습의 어깨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곡절이 있는 삶이 궁금했다. 최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리더스북)라는 자서전을 냈다.
 |
| 잔 자갈이 곱게 깔린 울산 북구 정자해수욕장을 행렬에서 뒤처진 참가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재희 기자 |
빨리 갈 욕심으로 자갈밭이 끝없는 정자해수욕장을 택했다. 거리는 짧았으나 힘은 더 들었다. S&T C에서 온 직원 3명이 함께 일탈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었는데 처음엔 가족으로 오인했다. 서로가 참 살가워 보였다.
시·도 경계를 지나니 경북 경주시 양남면이다. 관성해수욕장 송림에 도착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있는데 갈 곳이 없다. 바다 쪽으로 혼자 슬그머니 걸었다.
■경계를 걷는 자유로움햇볕 아래 평상이 있기에 앉았다. 주남복(47·양산시 평산동) 씨와 서경숙(47) 씨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져온 원두커피를 건네기에 냉큼 받아 마셨다. 보온병에 있어서인지 따끈따근했다. 뜨거운 커피는 외로움을 녹였다. 남복 씨는 신랑이 S&T모티브에 다니는데 진행요원이란다. 그래서 짝이 없어 동네 친구인 경숙 씨와 늘 함께 다닌다고 했다.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열혈 대원(?)이었다.
진행요원? 진행요원은 S&T모티브 고참 사원 20여 명으로 이뤄졌다. 교통정리와 길 안내 등을 도맡아 한다. 이 사람들의 노고로 길은 늘 안전하다. 그러고 보니 우가포 해파랑길에서 철조망을 하염없이 잡고 조심해서 가시라던 사람도 진행요원이었다. 남복·경숙 씨와 초콜릿과 과자를 주고 받았다. 외로움을 느꼈다는 말은 이제 취소해야겠다.길은 다시 시작됐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다보니 얼굴이 낯익다. "혹시 바람의 언덕에서 본 베트남 모자?" 알은체를 했더니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부모님이 여행갔다 오며 사 준 삿갓을 쓰고 부인을 애타게 찾던 그 남자. 모티브 박정재(33) 씨. 이번에는 부인과 나란히 걷는다. 모자는 너무 튈까 봐 안 쓰고, 가방에 막걸리만 4통 가져왔다고 했다. 동료들과 다 나눠먹고 없다며 다음엔 꼭 한 잔 주겠단다. 기자에게도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양남면 소재지를 지나는데 바이크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린다. 어, 그런데 S&T모터스가 아닌가. 대형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모터스의 동호인들이 3차 국토대행진에 동참한 것이다. 홍일점인 안진경 대리는 단연 멋있었다.
하서리에서 읍천리로 이어지는 '파도소리길' 주상절리 해변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다들 스마트폰에 풍광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세계에서도 희귀한 부채꼴 주상절리는 조물주의 '자랑질'이었던가.
누웠거나, 위로 솟고, 나래를 활짝 펼친 돌기둥들. 해안누리를 걷는 호사를 누렸다. 18㎞ 구간길 90% 이상을 종주대원인 아빠의 목말을 탔던 나한결(6세)은 나아해변에 도착한 뒤에도 생생했다. 어찌 보면 이 큰 국토대장정 행사를 매번 기획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한결이 아빠처럼 무한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