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장터 가치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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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회의 '장날 반추'(경북 청도, 1971).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 사진 좀 보세요. 소를 몰고 가는 딸아이가 수줍게 입을 가렸지요. 아버지가 멀찌감치 뒤에 섰네요. 장터로 가는 둘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가운 대화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건 또 어떻고. 광주리 파는 아낙네들이 논길을 즐겁게 걸어요. 모두 경쟁자인데, 마을에 들어서면 흩어져서 각자 장사를 해요. 그리고는 다시 모여 다른 마을로 이동하고.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 문화가 우리네 삶이에요."

부산사진계 2세대 원로 정정회 작품전
1970년부터 최근까지의 장터 풍경 담아
"장터 다니며 대화의 중요성 깨달았죠"


빵모자를 눌러쓴 노신사가 흑백사진을 보면서 신이 나게 이야기를 이어 간다. 사진 전문 미술관인 고은사진미술관 전시장이다. 그에게 "어느 사진이 제일 좋으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그랬던 것이다.

그는 정정회(74·사진)다. 부산 사진계에서 2세대인 원로 사진가다. '리얼리즘 사진'의 대를 이어 온 이다. 미술관의 '부산사진의 재발견' 연계 기획전에 정인성, 배동준에 이어 세 번째로 초대된 참이다.

고은사진미술관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그리고 조금은 삭막한 최근 장터의 모습을 담은 정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정성을 들여 골라내 전시장에 걸었다. 사진은 하이 앵글로 내려다본 옛 장터의 풍경에서 사람의 몸짓, 감성으로 점차 줌인 되는 느낌이랄까. 그게 '정정회, 장날 반추' 전이다.

그가 풀어내는 사진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정회는 사진 교육을 받지 않고 아마추어로 사진에 입문했다. 부산대 상대를 졸업하고 1969년에 부산은행에 입사한 말단 사원에게 한 임원이 사내 동호회 사진부장을 무작정 맡겼다. 특기란에 적은 '사진' 두 글자가 발탁 배경의 전부였다.

그리 시작된 사진 여정이 그땐 평생을 갈 줄 몰랐다. 40여 명에 달하는 회원을 이끌고, 혹은 분기별로 가족까지 동반하고 출사를 나갔다. '일요 과부' 소리 안 들으려고. 그러면서 당시 최민식 김복만 등 쟁쟁한 리얼리즘 사진가들이 모인 '청사회'에 가입해 혹독한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1973년에는 동아사진콘테스트에 '준특선'도 했다.

다양한 사진 작업을 하던 그는 부산을 찾은 일본의 유명한 사진가 이와미야 다케지로부터 일침을 맞게 된다. "당신 사진은 고무풍선 안에 있소. 거기서 당장 벗어나시오." 그때부터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고, 끝내 장터에서 그걸 발견했다.

"장터는 당시에도 흔한 출사지였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거기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었어요. 나에게는 사람, 그들 사이의 대화가 중요하단 걸 깨달은 거지. 한 컷 속에 철학이 모두 들어간 작업이어야 했어요. 근데 지금 장터는 너무 삭막해. 참 아쉬워요." 사진가는 그렇게 사라진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묻고 있었다.

고은사진미술관 이상일 디렉터는 "부산사진을 짚을 때 정정회 사진가의 작품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정회를 비롯한 원로 작가들이 부산사진의 맥을 잇는 데 기여한 바는 사뭇 크다"고 말했다. ▶'정정회, 장날 반추' 전=10월 30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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