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깊이를 전하고, 그림과 사진의 경계 허물다

  • 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독일 주관주의 사진 '시선' 전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아르모르' 시리즈 작품.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올해 유난히도 '힘겹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은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고 지지부진한 일상에 지친다. 아군은 없고 적들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공감한다면 이번 주 독일 사진계의 거장,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사진을 보러 가라고 말해 주고 싶다.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아르모르'와 '이마고' 사진 작품은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다. '아르모르' 시리즈는 박물관에 전시된 중세 갑옷을 촬영한 흑백 사진이고, '이마고'는 곤충 일부분을 확대해 촬영한 작품들이다. 색깔과 기교가 난무하는 요즘, 훼렌켐퍼는 아무런 기교나 조명 없이 흑백필름으로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진은 강렬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녀는 흑백 필름을 직접 현상하고 인화하는 아날로그 과정을 충실히 따르며 흑백 사진이 가진 미를 극대화해 보여 준다. 현상과 인화 시간을 조절하며 흑백이 표현할 수 있는 색의 깊이를 풍부하게 만들어 냈다.

훼렌켐퍼, 중세 갑옷 흑백 촬영
스노블, 사진에 회화 기법 더해
고은사진미술관 獨과 작품 교류


사진 속에 담긴 갑옷은 굉장한 매력이 전해진다. 장인들이 직접 철을 두드려 만든 중세 갑옷의 정교함이 놀랍고 갑옷 겉면에 새겨진 싸움의 흔적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인간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갑옷 사진은 치열한 일상의 전투를 치르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곤충의 모습을 담은 '이마고' 시리즈는 '아르모르' 작품들과 묘하게도 닮았다. 훼렌켐퍼는 우연히 곤충의 확대된 모습을 보다가 자신이 작업 중인 갑옷 시리즈와 비슷하다는 걸 발견한다. 인간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갑옷과 곤충이 생존을 위해 진화한 형태가 아주 닮아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의 훼렌켐퍼 사진을 보고 난 후엔 꼭 고은컨템포러리 사진관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독일 사진계의 또 다른 거장, 요제프 스노블의 사진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제프 스노블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사람을 촬영한 후 인화된 사진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려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킨다. 작품을 본 대다수 관객이 "이게 사진이에요? 그림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요제프 스노블은 회화 기법을 활용해 사진 작품에 좀 더 자유롭고 풍부한 해석을 가미한다. 그의 손을 거쳐 흑백 사진은 색을 얻고 또 다른 질감이 만들어진다. 이번 부산 전시에선 베니스 카니발 현장을 찍은 사진과 가족과 주변 친구를 찍은 작품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하면서 느낀 경계인으로서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지난해 독일 최고의 사진 미술관인 에센 포크방 미술관과 작품 교류 협약을 맺고 올해부터 독일의 국보급 사진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전문미술관이 부산에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독일 주관주의 사진 '시선' 전=30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051-746-0055.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요제프 스노블의 '쯔베센 짜이트' 시리즈 작품.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