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도네시아 대선 결과와 한국기업
/제대식 영산대 교수 아세안비즈니스학과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이자 우리나라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에서 9일 대통령 투표가 완료됐지만 아직 당선자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야당 투쟁민주당 후보인 조코 위도도(53·일명 조코위) 자카르타 주지사와 여당 및 다수의 이슬람 계열 정당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인도네시아운동당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63) 전 육군 중장 양진영에서 서로 승리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이달 22일까지는 양진영 지지세력 간의 물리적인 충돌 가능성으로 치안당국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금년 4월부터 2 사람 이상만 모이면 대선 이야기를 해왔다. 이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통령 후보가 1 대 1로 맞붙어 초박빙 분위기가 지속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출신 배경이 너무 다르게 때문이다.
'조코위'는 영세 가구상 출신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인물로, '인도네시아의 오바바'로 불릴 정도로 친 서민정책을 시행해 왔다. 군부와 엘리트 출신 정치인이 주를 이루고 있던 인도네시아에서 조코위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현 정권의 부패 관료 및 정치인으로 인해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친 서민 실용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조코위'에게 열광하고 있다.
또 하나의 대통령 후보인 '프라보워'는 전형적인 군부엘리트 출신 사업가이자 정치인이다. 프라보워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1983년 수하르토 전 대통령 딸과 결혼했고 특전사령관과 전략예비사령관 등 군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1998년 민주화 시위 당시 23명의 학생 운동가 납치를 지시하였다는 명분으로 당시 군인사위원회로부터 전역되었다. 이어 수하르토가 민중봉기로 축출되자 수하르토 딸과 이혼하고 요르단으로 망명했다가, 사업가로 변신하여 귀국하였다. 2008년 인도네시아행동당(Gerindra) 창당과 함께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금년 4월 총선에서는 11.8%(73석)로 3위를 차지했다.
프라보워는 1945년 헌법 33조(인도네시아 천연자원을 국유화) 수호 천명에서도 볼 수 있 듯이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일부 외국 투자자 등은 프라보워의 이러한 민족주의 성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조코위 후보가 당선되면 인도네시아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행정개혁을 통해 부정부패를 축소시킬 수는 있지만, 지지 세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민의 강력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로 2천여 개의 인도네시아 투자 한국기업 중 다수인 봉제업체들과 부산 진출 신발업체들이 생산원가 인상문제로 고민이 늘어날 것이다.
반면에 프라보워의 천연자원 국유화 및 해외자본 금융 분야 진출 제한 공약으로 고심하고 있던 외국의 자원개발업체와 금융 업종은 조코위의 당선으로 인한 사회기반 시설 확충과 외환시장 안정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