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의 묘라서?… 통영 '원균 묘 추정 봉분' 도로 확장에 사라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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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장군의 시신이 묻힌 진짜 묘로 추정되는 봉분이 경남 통영시 광도면 황리 산 435 도로 인근에 무성한 풀과 함께 방치돼 있다. 김민진 기자

"원균 장군이 패장(敗將)일지언정 역적(逆賊)은 아니지 않는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조선 수군을 이끌었던 원균 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봉분이 경남 통영에 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 도로 확장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비록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고 전장에서 달아난 패장으로 기록된 인물이지만 패전의 아픔도 역사라는 점에서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도 77호선 주변 야산
자갈 쌓인 채 풀 속 방치
발굴조사도 제대로 안 돼
"비극의 현장도 보존해야"


28일 통영시 향토 사학계에 따르면 광도면 황리 산435에서 발견된 봉분이 칠천량해전이 벌어졌던 정유년(1597년) 7월에 전사한 원균 장군의 실제 시신이 묻힌 장소로 추정되고 있다.

선조 38년(1605년) 이순신, 권율 등과 함께 '선무1등공신'에 추록된 원균은 시신이 없어 고향인 경기도 평택에 가묘를 만들어 봉했다.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진묘로 추정되는 봉분은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서 고성군 거류면 당동리로 이어지는 국도 77호선 주변 야산 20여m 지점에 완만하게 오른 자갈 흙더미로 남아있다. 지금은 흔적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주변마을 주민 사이에 '엉규이(원균의 지역적 발음으로 추정) 무덤' 또는 '목 없는 장군묘'로 불려 온 이 봉분은 각종 문헌과 구전을 토대로 원균의 묘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원균 장군은 이순신과 함께 출정한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격퇴했지만 가덕도해전과 칠천량해전에서 연이어 참패한 뒤 후퇴하다 전사했다.

통영군사편찬위원회가 1985년 펴낸 '통영군사'와 통영문화원의 '통영향토사 연구 논문집' 그리고 선조실록 및 선조수정실록에 선전관 김식이 기록한 원균의 마지막 행적을 고려할 때 봉분이 원균의 묘로 확실시된다는 게 향토 사학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성웅으로 추앙받은 이순신과의 갈등관계와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장본인이라는 낙인 탓에 후손조차 애써 외면해 왔고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그러다 최근 봉분 주변을 지나는 국도 77호선 확장공사로 아예 사라질 처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굴조사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20년 전, 봉분이 원균의 묘일 가능성을 제기했던 김일용 통영문화원 부원장은 "지금이라도 전문기관을 통한 철저한 고증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재 통영길문화연대 부대표는 "비극의 현장을 보존함으로써 교훈의 역사로 되새겨야한다. 거제시는 패전 기념관까지 세웠는데 통영시는 너무 소극적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다시 한번 그 시대를 고찰하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던 통영시는 뒤늦게 현장 조사에 나섰다.

통영시 관계자는 "후손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매년 인근 마을에 벌초비용을 보내오고 성묘도 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도 "발굴 조사를 위해서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 등 관계 기관과의 협의와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민진 기자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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