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빛'] 진통제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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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 신부

어릴 때 치과에 가는 것이 가장 싫었다. 치과에 가는 날은 죽을 만큼 아픈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왜 이렇게 아픈 주사를 맞고 치료를 받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내 발로 치과에 간다. 여전히 치과 치료는 아프고 싫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제는 내가 왜 이 주사를 맞아야 하고, 왜 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안다는 것이다.

2004년 한국갤럽은 한국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를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67.9%가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라고 대답했다. 종교를 통해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서 위로를 받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을 나쁘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진통제(Pain killer)로 생각한다. 믿음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만 하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그러한 신앙은 오히려 독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로 시름을 잊고, 문제를 외면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교인은 삶에서 만나는 고통을 '십자가'라고 부른다. 십자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고통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예수님이 부활한 것처럼 자신도 그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도는 "주님, 이 십자가를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이지, "주님, 이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뜻을 찾고 따르게 하소서!"가 아니다.

누구도 고통이 달가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삶에서 주어지는 고통은 때로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우리를 힘들게 한다. 사람들은 고통 없는 삶을 원한다.

신앙인들은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바란다. 그리고 고통 없는 삶을 곧 행복한 삶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통이 없는 삶, 그 삶이 곧 행복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행복이라고 기억되는 순간은, 상처가 없고 아픔이 없는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아팠던 상처가 새로운 의미로 느껴질 때, 힘들었던 일상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때, 내 곁에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 주고, 내 수고에 감사해 줄 때, 그런 순간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내 삶에 의미를 준다.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이 부활이 아니다. 의미 없던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래서 내가 그것을 견딜 힘이 생길 때 그것이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홍성민 신부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사제로 부산 성지성당과 주교좌 중앙성당, 김해 임호성당을 거쳐 현재 부산가톨릭대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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