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젊은이들에게 꼭 전해줘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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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부경대 총장

11월 11일은 무슨 날일까? 아마도 '빼빼로데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날 초콜릿 과자를 주고받는 긴 행렬에 자연스럽게 동참한다. 큰 부담 없는 작은 과자를 매개로 모처럼 서로의 정을 주고받는 일을 뭐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날 우리가 가슴속에 새겨야 할 소중한 의미들이 빼빼로데이라는 거대한 커튼에 가려 희석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빼빼로데이' 커튼에 가려진 11월 11일의 의미

그러면 11월 11일에는 무슨 일이 있나? 'Turn toward Busan'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부산을 향하여!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세계인들이 부산을 바라보며 1분 동안 묵념을 한다. 왜?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고 기꺼이 목숨을 바친 6·25전쟁 참전 유엔군 전사자들이 부산에서 영면하고 있으니까. 그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아야 하니까.

6·25전쟁에서 유엔군 4만 896명이 전사했다. 이 중 11개국 2천300여 명이 부산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날 영연방국가(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한국 시간에 맞춰 동시에 부산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을 올리는 것이다. 이 추모 행사는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빈센트 커트니 캐나다 한국전쟁추모협회 회장의 제안으로 2007년부터 한국과 캐나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매년 열리고 있다.

세계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나서는데 우리나라, 특히 부산 시민이라면 그냥 앉아 있을 수 없다. 11월 11일 11시 우리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유엔기념공원을 향해 경건하게 묵념을 올리자. 꽃다운 청춘을 던진 넋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하여, 그 가치에 대하여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자. 그리고 이날 세계가 이런 좋은 마음, 뜨거운 마음으로 부산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해 주자. 너의 마음도 그렇게 세계인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자.

11월 11일이 해군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고 석 달가량이 지난 1945년 11월 11일 손원일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해방병단(海防兵團) 창설식이 열렸다. 1894년 7월 15일 조선 수군(水軍)이 폐지된 지 51년 3개월 26일 만이다. 해방병단은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가 된 조직이다. 우리 바다를 스스로 지켜나갈 해군이 탄생한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됐고, 손원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군 제독에 임명됐다. 손 제독이 11월 11일을 해방병단 창설일로 잡았던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해군은 신사여야 한다'는 신념을 담아 선비 사(士) 두 자가 겹쳐지는 11(十一)월 11(十一)일을 창설일로 정했던 것이다. 그의 애국심과 '신사 해군'의 신념은 오늘날 대한민국 해군의 자부심이 됐고, 해군은 해마다 11월 11일을 해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해군이 창설되었지만 전투함은 한 척도 없었다. 손 제독은 1946년 함정건조기금위원회를 구성하여 4개월 만에 1만 5천 달러를 모으고, 이승만 대통령이 보태준 돈으로 미국에 가서 퇴역한 전투함을 구입했다. 그 배에서 숙식을 하며 수리해서 1949년 12월 '백두산함'이라 명명했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3인치 포를 설치한 뒤 1950년 4월에 진해항에 입항하였다.

아프지만 소중한 역사의 숭고한 의미 새겨야

이렇게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이 된 백두산함이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950년 6월 25일 오후 8시부터 26일 새벽 사이 부산 앞바다에서 침투 중이던 북한 무장 수송선을 발견하고 이를 격침시킨 것이다. 그때 북한 특수부대원 600여 명은 현장에서 수장됐고, 아군도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이것이 6·25전쟁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해협 해전이다. 만약 그때 북한의 특수부대가 부산에 상륙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11월 11일 속에는 들으면 들을수록 몸에 흐르는 피가 뜨거워지고 정신이 아득히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느낌을 주는, 우리의 아프지만 소중한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달콤한 초콜릿 과자 대신 역사의 숭고한 의미를 전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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