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기자의 피플&] '낙동강 하구 지킴이' 박중록 부산 대명여고 교사
입력 : 2015-01-29 20:17:17 수정 : 2015-02-04 12:55:25
사람과 공존하는, 살아 있는 자연을 아이들에게 남겨야지요
박중록 교사는 "낙동강 하구는 북쪽 김해평야가 먹이 창고 역할을 해 철새들이 머물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한다. 정대현 기자 jhyun@바다와 강이 만나는 다대포 앞바다. 1천300리를 흘러온 부드러운 흙이 각양각색의 모래톱을 이루고 있다. 바다와 강의 경계에 도요등·신자도·진우도가 일렬로 서 있다. 큰고니·왜가리·청둥오리·혹부리오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서부산권 개발 속에서 하구는 잘리고 상처가 났지만 그래도 철새는 찾아온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낙동강 하구다.
"많은 부산 사람이 겨울이 되면 철새를 보러 주남저수지나 우포늪으로 갑니다. 이곳 낙동강 하구가 아직도 전국에서 가장 다양한 철새종이 찾아 온다는 사실을 모르지요. 경사가 완만해 유속이 느리고 수심이 얕아 철새들이 머물기 좋습니다. 특히 북쪽 김해평야가 먹이 창고 역할을 해 시베리아·알래스카뿐 아니라 호주·뉴질랜드 철새들도 이곳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지요."
낙동강 하구 망가졌다 생각하던 중
을숙도 남단서 철새들 천지 발견
명지·녹산·삼락·대저 등 훑기 시작
1995년부터 환경 교사 모임 참여
'습지와새들의친구' 결성 이후엔
10년간 탐조 활동 보고서 내기도
"엄궁대교 건설 등 신중해야"
'낙동강 하구 지킴이' 박중록(56) 부산 대명여고 교사를 사하구 다대동 아미산전망대에서 지난 26일 만났다. 안개 때문에 흐릿했지만 왼쪽으로 멀리 가덕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을숙도·낙동강하굿둑·염막둔치까지 다 보인다. 광활했다. 철새와 모래섬의 공존이 아름답다.
"낙동강 하구 새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면 이곳 전망대가 가장 좋습니다. 새를 가까이서 보려면 명지주거단지 동편 명지갯벌이 최고지요. 더 가까이 가서 보려면 원형이 남아 있는 을숙도 남단으로 가면 됩니다."
박 교사는 낙동강 하구는 3천만 평으로 주남저수지의 20배, 우포늪의 40배가 넘는 크기라고 일러 준다. 특히 멸종위기종인 겨울철 큰고니는 전체 5천 마리 중 4천 마리 정도가 이곳으로 온다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란다. 고니들의 먹이 식물인 새섬매자기가 이곳엔 군락을 이룰 정도로 넘쳐났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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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학생들과 함께한 명지 철새 기행. 박중록 제공 |
"1990년대엔 저도 낙동강 하구가 생태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지역인 줄 알았어요. 을숙도에는 쓰레기매립장이 있었지요. 학생들과는 자주 견학을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 안 가던 을숙도 남단으로 더 내려가 보니 주남이나 우포에는 없던 새들이, 책에서만 보던 새들이 계속 나타나는 거예요. 놀라웠지요."
박 교사는 그때 '여기가 죽은 땅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단다. 90년대 후반 자동차를 구입한 박 교사는 다대포는 물론 명지·녹산·삼락·대저 등 일대를 샅샅이 탐색해 나갔다. '박중록의 주말'이 시작된 것이다. 학교 마치고 토·일요일 휴일만 되면 이곳으로 왔다. 습지와 철새는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걸까.
"1988년 생물교사가 되었지만 정작 자연과 환경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자연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에 1995년 전교조 산하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에 참여한 게 그 시작이었지요. 방학 때마다 전국 교사들이 모여 발표와 토론을 했는데 그때 들꽃·나무·민물고기·습지 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박 교사는 현재 습지와새들의친구(이하 습새) 운영위원이며 한국습지NGO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습새는 2000년 10월 박 교사 주도로 결성됐다. 습새는 조류조사는 물론 무분별한 서부산권 개발 정책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특히 녹색연합 등과 2000년대 초·중반 명지대교(현 을숙도대교) 건설 반대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여 나갔다. 토론회·서명운동에다 공사중지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대법원 패소로 결론 나고 말았다.
"위안을 삼는다면 최악인 직선화는 피했다는 점입니다. 을숙도 남단은 통과하지 않은 거죠. 또 하나는 현지 주민이 아니면 소송 당사자가 안 되는데 철새조사 활동 단체인 우리가 적격 판정을 받은 점입니다. 첫 사례지요. 다른 지역서도 유사 소송이 가능해졌습니다. 낙동강 하구가 완전히 망가진 땅이 아니구나 하는 점을 시민들에게 알린 점도 큰 성과입니다."
습새는 2004년부터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낙동강 하구 철새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0년간 탐조활동을 담은 500쪽 분량의 '낙동강하구 조류조사 보고서'를 지난해 11월 펴냈다. 낙동강 하구를 10개 구역으로 나눠 5개 팀이 조사한 것이다. 어떤 새가 얼마나 오느냐가 기본 내용이다. 박 교사는 1년에 평균 30만 마리의 철새가 오며 꾸준히 100종이 넘게 발견되는 곳은 전국서 유일하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앞으로 낙동강 하구 위협 요인 중 가장 심각한 현안은 무엇일까.
"가덕신공항과 엄궁대교 건설입니다. 특히 가덕신공항은 기존 남북 방향 활주로 비행 경로(안)일 경우 낙동강 하구 철새들에게 치명적이었는데 최근 동서 방향 활주로(안)로 변경,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계속 추이를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엄궁대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리·기러기 서식지였던 염막둔치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박 교사는 학교에서도 살아있는 환경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21회째였던 환경축제를 비롯해 환경동아리 활동, 낙동강 하구 철새 기행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박 교사가 담임을 맡을 때 주로 시행하는 학급야영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전한다.
"아이들은 다람쥐 쳇바퀴 생활에 늘 지쳐 있지요. 인문계고 학생들은 다 그럴 겁니다. 운동장·교실·실험실 등에서 이뤄지는 학급야영을 통해 아이들이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익힙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지요. 텃밭에서 기른 채소에다 고기를 함께 구워 먹으면서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결국 공부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박 교사는 대부분의 행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진행·정리를 한다고 설명한다.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젠 전통이 되었단다. 철새 기행도 처음엔 억지로 나서던 아이들이 나중에 정말 오기 잘했다고 말할 땐 교사들도 힘이 난단다. 박 교사는 가장 아름다운 땅으로 진우도를 꼽았다. 자연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단다. 4㎞도 넘는 남쪽 모래해안과 북쪽 광활한 갯벌, 그리고 중앙엔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어 경이롭다고 한다.
박 교사는 "조만간 하구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철새학교'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삶터가 얼마나 소중한 땅인지 스스로 깨달을 때 자연은 저절로 지켜지리리는 믿음에서다. 낙동강 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쇠제비갈매기가 최근 번식을 포기했고 전 세계 200~300마리밖에 없는 넓적부리도요 개체 수도 급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 아이들이 밤에는 '별이불'을 덮고 자고 낮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물별'을 보며 사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 땅이 바로 이곳, 낙동강 하구 '축복 받은 땅'이지요. 자연을 해치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것, 자연 기반 세계적 탐조 여행지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지속 가능한 이용'은 우리와 후손들의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입니다."
soney97@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