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이야기] '도로 사선제한' 폐지 안 된다
/안용대 ㈜가가건축 대표

도시의 길이 돌아오고 있다. 복개되었던 하천이 걷어지고, 자동차의 길인 고가도로도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면도로의 길들이 부활하면서 서울의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길, 홍대 앞길 등이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고, 각 지자체들도 길 찾기에 열심이다. 이 지역들은 임대료 상승으로 다시 공간이 자본화되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길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임에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주된 길의 너비가 12~15m를 넘지 않는다. 사람이 걷기에 적당한 폭이다. 이보다 더 넓으면 자동차의 통행으로 도로 양측이 가까워지기 어렵다. 주된 길 뒤로는 4~10m의 소로가 있으며 좀 더 안쪽으로는 4m에 미치지 못하는 골목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의 건물들은 230㎡ 내외의 작은 대지에 3~5층 정도가 대부분이다. 점포나 사무실, 주거 등이 적절히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길에 옛것과 새것이 만나고 일상에 진동을 주는 건축이 끼어들면서 새로운 길의 문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길 살아나고 있는 중
길·건축, 사람 흐름 배려해야
일시적 경기 활성 위한 규제 완화
길 막고 생활환경 악화 '불 보듯'
길과 만나는 건물은 자세가 겸손하며 대체로 1층에는 주차장이 아니라 점포가 있어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 건물은 디자인이 잘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근한 길로 인해서 생명력이 발휘되고 있다. 부산의 광복로가 그렇다. 광복로의 성공은 길의 폭과 중층 위주의 건물 높이가 주는 공간적인 친밀감과 관련이 크다. 그래서 길에 면한 건물의 높이와 공간감, 사람의 접근성은 거리 만들기에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최근 국제시장이 뜨고 있는 것은 영화의 영향으로 낮은 층수의 시장과 길이 혼재된 묘한 분위기의 잠재성이 드러난 덕분이다. 길에 면한 상점 건물이 길과 동떨어져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부산대학교 앞의 대형 상가 건물의 실패가 그렇다. 크고 높은 백화점이 대학가의 흐름인 길을 담아내지 못했다. 반면에 부경대 대연캠퍼스와 접한 주택가는 길과의 좋은 관계로 활기를 얻고 있다. 대학은 높은 담장을 허물고, 학생들이 밝은 골목길을 이용하면서 인근 단독주택들은 카페나 식당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단한 디자인으로 길이 바뀌면서 새로운 건물이 아니라 단독주택이 그대로 상업성을 확보한 것이다. 그래서 길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람의 흐름을 연결하는 가로와 건축의 배려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규제 완화 대상으로 거론되는 '도로 사선(斜線)제한' 폐지는 길과 생활환경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도로 사선제한'은 건물의 높이를 도로 반대쪽 경계선까지 거리의 1.5배 이하로 제한하는 건축규제이다. 정부는 좁은 도로에 접한 필지의 사업성 저하와 계단형 설계로 도시 미관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폐지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도로 사선제한' 폐지는 결국 이면도로 필지의 땅값을 상승시켜 쉽게 사업을 못 벌이게 할지 모른다. 또한 도시 미관 측면은 '사선제한'이 아니라 건축가의 역량에 의한 것으로, 오히려 높은 건물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건물의 높이 규제는 이유 없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개방감과 일조와 통풍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규제 완화인가? 결국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피해는 지구단위계획에 의한 '가로구역별 높이기준'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가로구역별 높이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부산 상업지역의 최근 변화를 보면 설득력이 없다. 너비 6~8m의 좁은 이면도로 상업지가 고층으로 개발돼 자동차가 넘치고, 1층 주차장은 사람의 흐름을 끊어 길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발생한 도시형 생활주택의 화재는 규제 완화로 인한 공간 환경의 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도시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까지도 개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로 사선제한'이 폐지되면 상업지역뿐만 아니라 도시 전역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고 길이 가진 잠재성을 파괴할 것이다. 어떤 법의 완화보다도 그 영향력이 클 수 있다. 일시적인 경기 활성화나 미관의 관점으로 '도로 사선제한'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그 폐해를 되돌리는 데는 너무나 큰 비용과 시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