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폐로, 그 마지막 외침] 하. 한수원, 불신의 벽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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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뒤집듯 약속 깨는데 원전정책 뭘 믿으란 거냐"

한수원은 고리원전 인접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길천마을 주민들이 집단 이주를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부산일보DB

원자력발전소 정책은 원전 자체의 안전성, 경제성과 함께 원전 주변 주민들의 협조가 중요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참사 이후 방사선 피해에 민감해진 시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해 더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지만 불신의 골은 여전히 깊다. 주민들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한수원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업피해 조사 합의하고도
용역 결과 나오자 보상 미루고
길천마을 집단 이주 추진 약속도
4년 다 되도록 진척 없어

골 깊은 갈등 해소 위해
신뢰 회복 노력 우선돼야

■어민들 "보상합의 지켜라"


기장 미역 양식어민들은 매년 9월 초 서해안에서 미역 종묘를 어미줄에 옮겨 키운 뒤 10월 하순 수온이 내려갔을 때 기장으로 옮겨 재배한다. 수온이 높아 미역 종묘를 기장에서 키울 수 없는 것이다.

1988년 1만 8천t의 위판실적을 보인 이 지역 수협의 기장 생미역 위판 실적은 2007년 이래 지금까지 400~1천t으로 급감했다. 성게 역시 378t에서 10t 남짓한 수준으로 줄었다.

기장 지역 15개 어촌계 1천400여 어민들의 모임인 기장군어업피해대책위원회(어대위)는 고리원전이 1978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뒤 거품 섞인 온배수를 배출하면서 수온이 높아지고 이물질을 정화하지 않아 해조류 종류와 생산량이 급감했다고 주장한다. 어대위는 한수원 고리본부에 배출수 공동 조사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이 갈등은 어업피해 보상에서 비롯됐다. 2008년 어대위와 한수원은 어업피해 조사에 합의하고 전문기관 용역보고서 제출 이후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고리원전의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에 대해 이해관계자인 어대위가 동의한다는 조항도 붙었다.

그러나 보고서가 나오자 한수원은 어업피해 규모가 과도하고 여러 문제가 있다며 보상을 미뤘다. 어대위는 일방적인 합의 파기라며 기장군에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연장을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기장군은 어대위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한수원은 기장군을 상대로 허가 연장 거부 취소 소송을 벌이고 있다.

어대위 김종학 위원장은 "손바닥 뒤집듯 합의를 파기하니 한수원을 어떻게 믿겠냐"고 허탈해 했다.

■인접 주민 "약속 왜 안 지키나"

고리원전과 담벼락을 나누고 있는 길천마을 주민들도 한수원의 약속 번복을 규탄한다. 후쿠시마 참사 직후 최인접 지역인 이곳 주민들이 집단 이주를 요구하자 길천마을과 한수원 고리본부, 기장군이 협의체를 구성해 용역 결과에 따라 집단 이주를 적극 추진하기로 2011년 7월 합의 각서를 체결했다.

용역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한수원이 길천마을을 전원개발사업구역으로 지정해 이주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4년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었다. 한수원은 "법규와 본부장의 권한을 벗어나는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길천마을 주민들은 지난 4~5월 매일 고리원전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29일에야 기존 합의주체 3자에다 하태경 국회의원과 산자부 관계자가 참여해 회의가 열렸다. 실무진으로 구성됐던 기존 협의체의 직급을 올리고, 협의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여전히 집단 이주보다는 지역 발전 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고, 주민들은 집단 이주가 불가하다면 그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요구한다.

■의견수렴, 늦어도 돼?

국회는 지난 1월 원전을 신설할 때만 의무화했던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주변 지역 주민 의견 수렴을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 신청에도 적용하도록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했다. 시민들은 한수원이 고리1호기 수명 재연장을 신청한다면 법이 바뀌었으니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6월 현재 고리1호기 수명 재연장 신청에 첨부할 보고서 내용을 확정하면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있다.

이유가 있었다.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서 달아 놓은 부칙에 '1월 20일 개정 법률 공포 후 6개월 이내 계속운전을 신청할 경우에는 신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주민의견 수렴을 보완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달렸다. 6월 18일이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 신청 시한이라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법에서 정하는 의견 수렴이 통과의례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는 사용후핵연료 보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을 지켜본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은 일정에 쫓겨 '벼락치기'로 형식적인 보고서를 내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을 보낸다.

기장지역 한 주민은 "지난 4월 예정에도 없이 주민자치 회의에 불쑥 들어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를 한다고 의견을 묻는데 매우 당황스러웠다"며 "주민들에게 미리 충분히 알려주고 해당 주제만 놓고 숙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여러 측면에서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역이슈팀=손영신·이호진·이자영 기자

iss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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