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세상보기] 43. 한겨울 견디기 위한 식물의 다이어트 워밍업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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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만덕산 백련사의 아름다운 단풍. 이숙희 제공

깊어가는 가을에 단풍이 절정이다. 울긋불긋 빛깔의 향연에 행락객은 연신 탄성을 내지르지만, 정작 식물에게 단풍은 살아남기 위해 제 살을 자르는 비명의 내색일 뿐이다.

식물은 계절의 변화를 주로 기온으로 감지한다. 잎이 시시각각 변하는 기온을 감지하고 뿌리에 전달하면, 뿌리는 수분 흡수는 물론 잎에 올려보낼 수분의 양을 조절하며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대응한다. 요즘처럼 밤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뿌리는 먼저 수분 흡수를 빠르게 줄인다. 뿌리에 수분이 줄면 삼투압(渗透壓)도 함께 떨어져 잎은 물론이고 가지와 줄기의 수분도 준다. 그냥 두면 잎 속 엽록소가 가지와 줄기로 거꾸로 흘러들어 생장장애를 일으키는데, 이를 막기 위해 식물은 잎자루와 가지 사이에 칸막이 격인 떨겨층을 만든다. 떨겨층 때문에 수분 공급이 완전히 끊긴 잎이 급속히 마르면 엽록소는 이내 푸른빛을 잃고, 지난여름 내내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빨간 색소 안토시안(anthocyan)과 노란 색소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가 되살아 돋보인다.

단풍나뭇잎이 온통 붉게 치장하는 것은 안토시안이 많기 때문이며,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변신하는 것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해서이다.

올해 단풍빛깔은 예년 같지 않다. 극심한 가뭄으로 기온이 떨어지기도 전에 잎이 시든 탓에 떨겨층이 생겨도 제구실을 못 해서이다. 9월에 비를 충분히 맞고 10월 들어 일교차가 클수록, 그해 단풍은 빛깔이 선명하고 또 오래간다.

아무리 아름다운 단풍도 봄철 화려했던 꽃처럼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떨겨층이 생기면 며칠 새잎이 바싹 마르고 산들바람에도 잎자루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떨구기 때문이다. 낙엽이 지고 혹한기에 들면 식물은 수분 흡수를 거의 중단한다. 온갖 영양소가 녹아 있는 땅속 수분은 식물에게 생명수이다. 식물이 이런 수분의 흡수를 중단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식물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잎과 가지에 수분이 많은 상태에서 추위가 닥치면 냉해(冷害)를 심하면 동해(凍害)를 입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월동 채비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물의 경이로운 생존전략이 그 속에 숨어 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남은 식물은, 기온이 영상 5도 이하로 떨어지면 수분 흡수를 중단하고 알몸으로 맞선다. 잔가지는 매서운 삭풍에 부대끼다 속절없이 꺾이고, 굵은 줄기도 육중한 폭설에 못 이겨 뚝뚝 부러진다. 꺾인 잔가지는 지난여름 잔뜩 불린 몸집이며, 부러진 줄기는 병·해충에 시달렸거나 이웃 식물에 치인 바람에 부실해진 굵은 가지이다.

식물에 단풍은 새봄을 맞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다이어트의 워밍업이며, 식물에게 겨울나기는 부실한 부분을 잘라내고 내실을 다지는 구조조정이자 수백·수천 년을 거뜬히 사는 그들만의 장수 비책이다. 다음 회(11월 6일 자) 주제는 '식물의 놀라운 생존전략 ②, 신비한 소통 시스템'이다. 박중환/'식물의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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