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멘토-김대승 영화감독 편] 임권택·정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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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과 만나기 전후, 난 다른 사람이 됐다

1997년 9월에 개봉한 '노는계집 창' 촬영 모습. 임권택 감독이 오른손을 들어 뭔가를 지시하고 있으며, 김대승 조감독이 배우의 시선을 잡아주기 위해 카메라 옆에서 주먹을 쥐고 있다. 김대승 감독 제공

내 인생의 멘토라면, 임권택, 정지영 감독이 먼저 떠오른다. 임권택 감독은 영화감독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임권택 감독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영화감독의 꿈을 구체적으로 내 앞에 가져다 준 분이 임권택 감독이다. 정지영 감독으로부터는 서사를 만들어가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부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영화광이었다. 4~5살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극장에서 벤허 등을 관람했다. '주말의 명화'를 꼭 챙겨보는 아버지 옆에서 같이 보다가 잠든 적도 많았다. TV 옆에 아버지가 녹화한 베타테이프가 가득 쌓여 있었던 기억도 난다. 이때부터 뭔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영화광' 아버지 영향 감독 꿈 품어 
정지영 감독 밑에서 일하며 
이야기 구성 능력 어깨너머로 익혀
'하얀 전쟁' 흥행 성공에 자부심  

임권택 감독 '서편제'부터 합류 
영화 인생에 중요한 고언들 체득 
잘못된 점 보이면 냉정하게 꾸짖어  
데뷔 작품 성공 등에 큰 힘 돼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정지영 감독 밑으로 들어갔다. 영화 '하얀 전쟁' 스크립터를 맡았다. 연출부 막내로 고되고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정 감독은 서사를 만들어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 정 감독은 큰 그림을 만들고 배우들이 세부적으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등을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깨 너머로 그런 것을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이 무렵 남산 인근 영화진흥공사 후반작업실에서 평소 존경하던 임권택 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넙죽 인사를 하자 친절하게 격려해주었다. '하얀 전쟁'은 흥행 성공은 물론 각종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비록 연출부 막내였지만 자신감과 자부심도 생겼다.

김대승 감독에게 이야기 구성 등을 가르쳐준 정지영 감독. 연합뉴스
1992년 '하얀 전쟁' 개봉 후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중 임권택 감독 연출부에서 전쟁 영화 유경험자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고 바로 지원했다. 연출부 의상담당 제3 조감독을 맡았다. 임권택 감독께 첫인사를 드리니 "너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뭘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다"고 했다. 처음부터 조감독 생활 10년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을 듣고 오히려 안심이 됐다.

애초 예정된 '태백산맥'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뒤로 미루어지고 '서편제'를 먼저 촬영하게 됐다. 임 감독은 평소 자상했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엄격했다. 어느 날 3~4세 아기가 등장하는 장면 촬영 직전, 임 감독이 갑자기 "의상 담당이 누구야"라고 호통쳤다. "애 옷이  깨끗하다. 그 당시 못 먹는 시절, 혼자 노는 애의 옷치곤 너무 깨끗하다"고 야단쳤다. 너무 혹독하게 혼이 나 이날 점심을 못 먹을 정도였다. 

서편제 이후 태맥산맥을 찍을 때 일이다. 염전 장면 때 임 감독이 갑자기 "김치 쪼가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조감독들이 모여 "미리 말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며 투덜거렸다. 이를 알게 된 임 감독은 조감독들을 불러 모아 놓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관객과 만나는 순간까지 뭐가 최선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영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반성도 됐다. 당시 임 감독의 고언을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얼마 후 연출부 제1 조감독이 됐다. 영화 제작의 중심부에 선 것이다. '노는계집 창'에 이어 '춘향전' 촬영 때 일이다. 당시 주연은 신인배우인 이효정(성춘향)·조승우(이몽룡) 씨였다. 임 감독이 연기를 시킨 다음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오케이야? 엔지야?" "…." 나는 이때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날 이후 눈에 불을 켜고 배우들의 연기를 살폈다. 어느 날은 촬영 동선을 알려주고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이때 감독대행으로 배우들에게 연습을 시키고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에는 이게 너무 힘들었고 부담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니 임 감독이 제자와 후배인 나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임 감독에게 "데뷔하겠다"고 하니 임 감독은 "의심해라"라고 조언했다. "너가 찍고 있는 게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의심하고 배우들이 바르게 연기하는지, 편집하는 게 바르게 가는지 의심하라. 감독은 의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말씀도 내 영화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지금도 후배와 제자들에게 항상 들려주고 있다.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 시사회 때 임 감독을 초대했다. 정말 긴장됐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임 감독은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30분 동안 장면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이런 장면 사운드는 이렇게, 저런 장면의 편집은 저렇게"하면서 심하게 야단을 쳤다. 임 감독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제자가 자만하지 않도록 회초리를 든 것이다. '태맥산맥' 때 "영화 개봉 전이라 다시 손보면 된다"고 했던 일도 떠올랐다. 개봉 직전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지적한 내용을 최대한 손봤다.

나는 2001년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또 독일 함부르크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이게 모두 임 감독의 가르침 덕분이다.

이후 '혈의 누' '가을로' '후궁' 등을 제작했다. 후궁은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후궁 시사회 때 임권택 사모님이 "이렇게 야한 것도 임 감독에게 배운 거냐"고 농담하기도 했다.

7년 전에 임 감독의 제안으로 동서대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 100편 이상 영화를 만든 임 감독의 영화세계를 후학들에게 전하는 가교 역할을 맡고 싶고, 스승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혜를 후학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정리=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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