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 넘어 치유농업으로] 치유로서의 농사, 지친 마음에 초록불을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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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식물 기르기를 하거나 농사에 매진하던 도시농업이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서 심신의 건강과 치유의 역할을 담당하는 치유농업으로 그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3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열린 제13회 부산도시농업박람회 광경. 이재찬 기자 chan@

'이제는 도시농업을 넘어서 치유농업이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이한 부산도시농업박람회 일환으로 지난 20일 오후 2시 부산시민공원 내 시민사랑채 백산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은 '치유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치유농업 활성화를 위한 모색'이란 제목으로 마련됐다.

13회 부산도시농업박람회 중
치유농업 심포지엄 큰 반향

농업이 치매·우울증 등에 효과
농업의 새로운 가치 창출 가능성
활성화 위해 우선 법제화 돼야


4시간 넘게 진행된 국제심포지엄 동안 200여 명의 청중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직은 생소할 수 있는 국내외 치유농업 현황을 알아보고, 농업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치유농업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부산에서도 치유농업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날 집중적인 관심과 질문 세례를 받은 벨기에 치유농업협회 윌렘 롬바우트 사무국장이 전한 '플랑드르의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사례부터 알아본다. 

지난 20일 오후 부산시민공원 내 시민사랑채 백산홀에서 열린 치유농업 관련 국제심포지엄에 쏠린 청중들의 관심. 4시간 여 동안 진행된 심포지엄인데도 청중들은 마지막까지 거의 자리를 지켰다. 김은영 선임기자
■벨기에의 사회적 농업과 치유 농장

윌렘 사무국장이 전한 '플랑드르의 사회적 농업'은 치유농업만큼이나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 보다 쉽게 풀이하자면 장애인, 정신질환자, 학생돌봄센터에서 보낸 학생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건강과 돌봄·치유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이뤄지는 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벨기에는 북부 플랑드르와 남부 왈로니아로 나뉘고, 양 지역은 분리된 국회와 정부를 두고, 농업, 복지, 교육, 고용에 관한 정책을 결정한다. 특히 인구 625만 명의 플랑드르는 면적(1만3682㎢)의 45%가 경작되고, 대부분의 기업은 목축업과 관련돼 있다. 4개 농가 중 1곳이 기본 농업 활동과 함께 환경 및 자연보호, 가내수공업, 관광, 교육, 돌봄 농장을 겸하고 있을 만큼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윌렘 사무국장은 "플랑드르의 사회적 농업은 '그린 케어' 개념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린 케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린 케어가 약자를 대상으로 식물과 동물 등 녹색환경 내에서 의미 있는 일상생활을 하도록 전문적인 보조자가 도와주는 것이라면 사회적 농업은 농장 내에 설정되지만 전문적 혹은 취미일 수도 있으며, 농업과 원예 작물에 있어서의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린 케어 공급자 유형도 △전업농이 운영하는 치유 농장(621곳·2016년 말 기준) △농업이나 원예 생산물 관련 없이 동물과 식물만으로 작업을 하는 기업 치유 농장(202곳) △개인과 비영리 단체의 소규모 프로젝트(119곳) △보호시설 농장(23곳) △원예와 농업 활동을 갖춘 보호 작업장(31곳) 등이다. 치유 농장은 2006년 147곳에서 10년 새 621곳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플랑드르 지방정부가 2005년부터 치유 농장에 보조금을 지급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매년 2250명이 정기적으로 치유 농장을 이용 중이며, 이 중 1500명(성인 900명, 미성년 600명)은 개인 이용자, 750명은 단체 이용자로 파악됐다.

농가 보조금은 1일(6시간) 40유로(이용자 수와 관계없이 최대 보조액). 계약서 활동 계획과 달리 치유 활동이 없는 사실이 적발될 경우는 치유 농장은 보조금 취소와 법령에 따라 처벌받는다.

눈에 띄는 조직으로는 '그린케어 지원센터'. 네덜란드 치유농업협회가 농장주 중심이라면 플랑드르는 농민 단체 조합이 초창기부터 치유 농장을 시작했다. 지원센터는 농민과 복지기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치유 환자와 농민 간 수요·공급 연결, 교육 및 정보 제공 등의 업무를 주로 맡는다.

윌렘 사무국장은 "농장도 환자를 치유하는 곳이며, 사회복지기관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농장이나 기관이 함께 계획을 세우고 업무를 해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20일 오후 2시 부산시민공원 내 시민사랑채 백산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치유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치유농업 활성화를 위한 모색' 광경. 사진=김은영
■농사 활동이 치매 예방에도 도움

다음은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의 예방노인학 연구부장인 시마다 히로유키 박사가 발표한 '일본 노년기의 농업 활동과 신체 활동을 통한 치매 예방'. 시마다 박사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통해 연령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치매"라면서 "연령과 치매 유병률을 보면, 60대와 70대는 많지 않지만 80대, 90대가 되면 급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80대가 되어도 80%가 치매에 안 걸릴 수 있고, 90대가 되어도 60%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감안한다면 치매라는 건, 80, 90세가 되어도 예방이 가능한 질병이라는 결론도 나온단다.

또한 80대의 치매 병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30년 전부터인 50대부터 뭔가를 하자고 하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 이는 치매뿐 아니라 다른 질병 예방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런 예방이 필요한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건망증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치매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기억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인 MCI(경도 인지 장애)에서 적절한 예방을 한다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치매 위험 요인을 살펴보면 당뇨병, 고혈압, 비만, 우울증, 신체 활동 부족, 흡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선진국의 경우 활동 부족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런 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특별한 치료가 아니라 일상에서 습관처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시마다 박사의 주장.

고령자에게 의미 있는 활동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설문조사 결과, 가드닝과 여행 등으로 나타났다. 가드닝과 농경 활동을 하는 노인의 뇌를 검증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은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마다 박사는 결론적으로 농업과 원예 활동을 하는 사람은 계획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 효과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가드닝이 치매 증상 완화, 수면 상태를 좋아지게 하거나 인지 기능이 좋아지는 등의 결과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농업이 운동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도움이 되고, 그렇게 생산된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에 농업을 통해 조금이라도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종합토론에서 동아대 박현태(건강과학대학 건강관리학과) 교수는 "고령화 문제에서 노인성증후군 예방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데 단순한 운동보다는 사회적 활동을 통한 운동, 그 중에서도 농업이 가장 좋은 솔류션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의 예방노인학 연구부장인 시마다 히로유키 박사(왼쪽),벨기에 치유농업협회 윌렘 롬바우트 사무국장. 사진=김은영
■지친 도시민에 치유의 기회 제공

이 밖에 국내 치유농업 사례는 △국내의 치유농업 관련 연구 동향(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김경미 연구관) △협동농장 '행복농장' 운영(충남 홍성군·최정선 이사) △건강, 장,수 발효 순창! 치유농업이 움튼다(전북 순창군·순창농업기술센터 이구연 소장) 순으로 소개됐다.

농촌진흥청 허건량 차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과 폭력, 정서불안 등의 사회문제를 농업 활동, 즉 다른 생명체에 대한 '기르기' 또는 '돌보기' 활동을 통해 완화시키거나 치유하고자 한다"면서 "농촌 혹은 농업 활동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고, 휴식과 안정을 찾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자 매개체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도시농업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김기선(식물생산과학부 원예과학전공) 교수도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같이 한 식물 가꾸기를 생활 속에서 즐기면서 심신의 건강과 나아가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 도시농업이고, 그 외연이 확대된 것이 치유농업"이라면서 "이제 농촌은 건강한 농작물 생산이라는 1차적 기능뿐만 아니라 바쁘고 고된 도시생활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쉼과 치유의 기회를 주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동아대 친환경도시농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도훈 교수는 "부산의 경우,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은 아직 미미한 편"이라면서 "도시농업이 법제화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처럼 치유농업도 법제화가 최우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진청에서 치유농업 법제화 업무를 추진 중인 김경미 연구관도 "벨기에 경우처럼 치유 농장 이용자와 농민 간 수요공급 가교 역할을 하는 지원 센터의 역할이 무척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그 단계를 논하기엔 이른 것 같다"면서 "운영 예산 등을 딸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한 법제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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