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문화 톺아보기] 19.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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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여, 진실한 마음으로 한국과 사귀고 있는가

일본에 국서를 전하고 귀국길에 오른 통신사 행렬을 그린 '조선통신사래조도'. 부산일보DB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는 일본의 힘이 작용한 폭거의 결과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내는 분담금을 제때 내지 않는 소위 '분담금 카드'로 위안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은 최근 탈퇴를 선언한 미국(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앞서 지난 2015년에도 일본은 중국이 신청한 '난징대학살 기록'이 등재되자 '정치적 이용'이라고 반발하며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또한 일본 외무성은 지난 2015년 유네스코가 제시한 '당사자 간 대화' 조건을 끌어와 사실상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등재를 막았다.

이는 일본 언론도 부정하지 않는다. 10월 27일 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 보류된 것에 대해 정부(일본) 관계자가 "분담금 지불 거부도 불사한다는 자세로 외무성에 (등록 저지를 위해) 움직이도록 지시했다"고 밝히며 일본 측의 노력이 반영됐다고 보도했다. 또 올해 6월 일본 관방장관은 "전력을 기울여 위안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저지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위안부 세계기록유산 등재 저지를 위해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섰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의 이같은 행위는 문화 파괴행위인 반달리즘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로써 유네스코의 신뢰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조차 힘의 논리, 돈의 힘 앞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신청한 조선통신사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는 점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깨우쳐 주는 인권 존중의 정신과 조선통신사의 평화 정신 둘 다 모두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점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위안부와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이웃의 두 나라가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의 기록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인 반성과 더불어 미래를 향한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에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끝내 이를 외면하고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따져 이분법으로 대응했다. 이로써 양국의 감정의 골은 더 깊게 파이게 됐다.

이런 일본 정부는 양국 민간의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를 통해 진심으로 배워야 한다. 아니 성찰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일본에 원하는 것은 서로 믿고(信) 교류(通)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통신사의 핵심 정신이다. 조선통신사의 '통신(通信)'이라는 말이 이를 얘기하고 있다. 

올해 5월 부산 중구 광복로에서 열렸던 조선통신사 축제 퍼레이드 행렬. 부산일보DB
조선통신사가 이루어졌던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의 한일 관계를 어찌 '평화'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 기간 양국 간엔 수많은 갈등과 긴장도 분명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런 불안정 속에서도 평화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국이 '믿음의 교류'라는 이상을 유지하려 서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300여 년 전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했던 일본 쓰시마 번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는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성신(誠信)을 다해 조선과 사귀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실제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 앞에는 지금도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이라고 새겨진 그의 현창비가 있다. 이를 통해 보듯 조선과 일본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서로 믿고 교류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조선통신사는 진심을 다해 성의와 믿음으로 교류한다는 '성신교린' 정신이 이뤄낸 한일 외교의 최정점이 될 수 있었다.

냉각의 한일 관계, 일본의 방해로 위안부 등재가 보류된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성신교린의 정신은 어쩌면 지금 더 필요할지 모른다. 일본은 아메노모리의 "속이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성신을 다해 조선과 사귀어야 한다"는 말을 가슴으로 느꼈으면 한다.

일본이여! 성신교린의 정신으로 돌아가라. 소통과 신뢰의 상징이던 조선통신사의 정신으로.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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