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춘문예-단편소설 심사평] 역사에 휘둘리지 않고 시간·장소 적절하게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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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조갑상, 박향, 황은덕(왼쪽부터)

예심에 올라온 작품들에서 4편을 주의 깊게 읽었다. 외상중환자 전문의를 다룬 '바다로 가는 섬들', 퇴직 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인물 이야기 '스페로 스페라', 김치 배송 회사 내 인간관계를 다룬 '사상의 유령들', 제주 4.3을 소재로 한 '맹순이 바당'이다.

외상중환자 문제가 얼마 전 세간의 관심을 모았는데 '바다로 가는 섬들'의 작가는 사명감과 개성이 강한 여의사를 내세웠다. 급박한 응급실 모습과 처치 과정이 반복되어 집중력을 해치고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서 사망한다는 아이러니를 그럴듯하게 그리지 못했다.

두 번째 작품은 주제로 삼은 '스페로 스페라'의 뜻을 말미에 설명하지만 이야기 속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 '사상의 유령들'은 장소가 부산이라 눈에 보이듯 읽었지만 연극을 같이 하다 아내가 죽었다는 주인공의 과거가 현재의 갈등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고민만 하다 끝나 아쉬웠다.

'맹순이 바당'은 제주 4·3항쟁부터 6·25 한국전쟁 직후를 사는 해녀 이야기다. 신혼부부에게도 학살과 폭력은 비껴가지 않았다. 젊은 아낙이 남편 주검도 거두지 못하고 육지로 도망쳐 물질하며 힘껏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어휘와 비유를 제자리에 앉히고 장면을 옹골차게 만들어 힘차고 실감 난다. 역사에 휘둘리지 않고 시간과 장소를 적절하게 압축하면서 우리네 삶의 연속성을 생각하게도 했다. 만만찮은 실력을 갖춘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다른 분들의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김성종·조갑상·박향·황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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