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춘문예-동화] 비단개구리 알/박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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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전학 간 학교에 3학년 아이들은 열 명 남짓 되었다. 전 학년 모두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시골 학교였다. 거기다 새로 살게 된 집은 주변에 슈퍼도 하나 없는 외진 곳이었다. 앞이 아득했다. 아빠는 당분간만 이곳에서 지내다가 형편이 안정되면 다시 서울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집 나간 엄마에 대해서도 일주일 뒤면 올 거라고 했었는데 벌써 6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니까.

"주목. 서울에서 새로 전학 온 친구다. 소은아, 친구들한테 한마디 해라."

담임선생님은 내가 한때 할머니 말투라 불렀던 경상도 사투리로 카랑카랑하게 나를 소개하셨다. 시골학교의 선생님은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의 세련된 담임선생님과 말투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안녕? 나는 한소은이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자."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내 소개를 하는 동안 열 명 남짓한 시선이 나를 뚫어져라 구경하고 있었다.

"와, 예쁘다."

한 남자 아이가 말했다. 시골 아이들도 보는 눈은 있구나 하고 우쭐하려던 순간,

"예쁘긴 뭐가 예쁘노."

또 다른 남자 아이의 삐죽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를 향해 힘껏 눈을 흘겼고 그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손가락을 불쑥 들어 올리고는 이를 훤히 드러내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실실 웃어댔다. 나는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앉을 자리로 예상되는 유일한 빈자리가 그 아이의 옆자리였기 때문이다.

"저기 반장 옆에 빈자리 보이제? 저기 가서 앉아라."

예상대로 선생님은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고 나는 느린 걸음으로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저런 아이가 반장이라니. 시골은 시골이다.

"오, 백과 좋겠네."

다른 아이들이 놀리듯이 말했다.

"백과? 네 이름이 백과니?"

'이름도 생긴 것만큼 촌스럽구나'라고 비웃으려던 참이었다.

"장난하나? 내 이름은 백승호고 백과는 내 별명이다."

"백과가 무슨 뜻인데?"

"비밀이다."

백과가 킥킥거리며 말했고 나는 괜히 약이 올랐다.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백과는 축구공을 들고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 남자아이들도 우루루 뒤따라 나갔다. 여자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 주변에 몰려왔다.

"안녕? 나는 김선주다. 친하게 지내자."

여자 아이들 중 키가 가장 큰 선주가 웃으며 말했다. 선주는 반에서 부반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응. 그래."

나는 억지로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근데 반장은 왜 별명이 백과야?"

어떤 우스꽝스러운 뜻의 별명일지 기대하며 내가 물었다.

"백과사전이란 뜻이다. 모르는 게 없어서 선생님이 지어 주셨다."

"아…. 그래?"

의외의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백과랑 짝지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니도 뭐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라."

"칫, 많이 알면 뭐 얼마나 알려고."

"진짠데? 수학도 잘하고 한자도 많이 안다."

"그 정도 가지고 뭐."

"오, 니도 수학 잘하나?"

"한자도 쓸 줄 아나?"

아이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차례로 물었다.

"수학 경시대회에서 상 받은 적 있어. 한자는 학습지하면서 배웠고."

"오, 니 대단하네." 내 한마디에 감탄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다시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백과랑 친해지면 좋다. 어떨 때는 선생님보다도 더 설명을 잘하는 거 같더라."

한 아이가 또 백과를 칭찬하며 말했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귓속을 긁었다.

"근데 니는 왜 서울에서 이런 촌으로 전학 왔노?"

다른 아이가 문득 나에 대해 물었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내가 대답을 얼버무리는 사이 갑자기 선주가 끼어들었다.

"할머니랑 같이 살라고 이사 왔을걸. 니 복남 할머니 손녀제?"

선주가 할머니의 이름을 말하자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이장이라서 이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는 거의 다 알고 있거든."

그 사실이 선주는 마치 자랑인 양 큰 소리로 말했다.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럼 엄마 아빠는 서울에 계시나?

"아니…."

"아빠랑 둘이만 왔다고 들었는데. 맞제?"

선주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 말 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아직 친하지도 않은 낯선 아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짜증스러웠다. 미리 물어보지도 않고 내 가족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대는 선주가 이해되지 않았다. 집안 사정까지 남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을 만큼 좁은 동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막막했다.

"너는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얘기를 막 하고 그래?"

내가 발끈해서 눈을 부릅뜨고 쏘아댔다. 선주를 포함한 아이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생각보다 크게 나온 목소리에 나도 내심 놀랐다.

"왜 신경질이고? 별로 나쁜 이야기도 아닌데."

"나쁘건 말건 내 얘기잖아. 아무한테나 말하고 싶지 않은 얘기일 수도 있지 않겠니?"

"야. 그게 뭐 어때서 그라노? 여기 엄마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는 애들 많다."

다른 아이가 나서며 말했다.

"누가 엄마가 없대? 내가 너희랑 똑같은 줄 알아?"

"뭐라고? 그럼 니는 뭐가 다른데?"

"……." "아까부터 잘난 척만 하더니. 니는 서울에서 왔다 이거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선주가 목소리를 높이며 다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누구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말한 건 네 잘못이잖아!"

"뭐 그 정도로 사생활을 침범하는 거가? 느그 아빠 사업 망해서 집이고 뭐고 다 넘어간 거란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니 느그 아빠랑 할매 집에 얹혀살러 온 거다이가!"

"……."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팔다리에 힘이 쑥 빠졌다. 언제 왔는지 백과가 나를 일으키려고 내 한쪽 팔을 잡았다. 그 손을 휙 뿌리치고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내 바로 뒤에는 어느새 공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남자 아이들이 서 있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안 그래도 먼 길을 나는 더 천천히 걸었다. 이런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더 감감해졌다. 땅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소은이 왔니?"

아빠가 절뚝이는 다리로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아빠가 운영하던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부터 아빠는 거동이 불편해졌다. 의사 선생님은 아빠가 뇌졸중이라고 했다.

"아빠. 여기서 언제까지 살아야 돼?"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여긴 나랑 안 맞아. 애들은 말도 안 통하고."

"낯설어서 그럴 거야. 조금만 지내보다가 다시 얘기하자."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애써 웃는 아빠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학 온 첫날 이후 여자 아이들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른 아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앉아 밥을 먹는데 나는 내 자리에 혼자 떨어져 앉아있었다. 밥이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입에 넣고 씹었다.

무슨 이유인지 백과도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제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그래도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있어서 완전히 동떨어진 기분은 덜했다.

"니 애들이랑 말 안 할 거가?"

백과가 넌지시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도 엄마는 안 계시고 아빠랑 할머니랑 산다. 내가 다섯 살 때 집을 나가셨거든. 선주는 할아버지랑 둘이 살고."

"……."

"우리한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보니까 선주도 별 뜻 없이 말한 거 같다. 기분 풀고 니가 먼저 사과하면…."

"왜 내가 먼저 사과를 해? 사과는 선주 걔가 해야지."

"니도 잘한 건 없잖아. 성질도 니가 먼저 부렸고."

"됐어. 잘난 척하기는."

나는 식판을 들고 홱 일어나버렸다. 왜 그렇게까지 날카로운 반응이 나온 건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백과도 나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과학 시간, 선생님은 개구리가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개구리 알을 잡아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는 아빠와 함께 뒷산 개울가로 갔다. 아빠는 맨손으로 쉽게 개구리 알을 잡았고 비닐봉지 안에 그것을 물과 함께 담아 봉지 입구를 꼭 묶어주셨다.

다음 날 선생님은 크고 네모난 유리통 안에 물을 붓고 우리가 잡아 온 개구리 알을 넣자고 하셨다. 그런데 아빠가 잡아주신 개구리 알과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개구리 알의 생김새가 달랐다.

"도롱뇽 알이네?"

내 개구리 알을 보고 한 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분명 개구리 알이라고 했는데 이상했다. 놀라운 건 선생님마저도 그것을 도롱뇽 알이라고 하셨다.

"야. 그거 갖다 버려라. 도롱뇽이 알 깨고 나오면 올챙이들 다 잡아먹는다."

한 아이가 말했다.

"이거 개구리 알 맞아…."

내가 말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들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크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빠가 다리를 절룩이면서 뒷산까지 올라가 잡아주신 건데.

"그거 개구리 알 맞아요. 비단개구리 알."

뜻밖에도 선주가 손을 들고 선생님께 말했다.

"맞아요. 그거 비단개구리 알이에요. 초록색에 검은 얼룩무늬 있는 거요."

이번에는 백과가 덩달아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아-"하며 끄덕였다. 선생님은 비단개구리를 다른 통에 따로 담아 다른 개구리들과 자라는 모습을 비교해보자고 하셨다. 그런데 비단개구리 알을 따로 담을 통이 마땅히 없었다.

"이 통에 담으면 되겠네요."

선주가 자신의 플라스틱 물통을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내 개구리 알을 자신의 물통에 고이 담고 물을 부어 주었다. 반 아이들의 개구리 알들과 내가 가져온 개구리 알이 각각 다른 통에 담긴 채 창가에 나란히 놓였다. 네모 모양의 큰 유리통과 작은 플라스틱 물통이 사이좋게 놓여있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 나는 선주의 자리로 갔다.

"그때는 내가 너무 예민했어."

"아니다. 내가 말을 심하게 했다. 미안. 이제 점심시간에 밥 같이 먹자."

선주가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선주의 손은 따뜻했다. 그 손을 꼭 잡은 채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제자리에 앉아있는 백과와 눈이 마주쳤다. 백과는 내가 전학 온 첫날처럼 엄지손가락을 불쑥 들어 올린 채 이를 훤히 다 드러내고 싱긋 웃어 보였다. 그 표정이 꽤 우스꽝스러워서 나도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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