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춘문예-평론 당선 소감] 비루한 작가가 되지 않게 시도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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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외삼촌이 한 명 있는데, 이름이 정차준이다. 시와 동화를 썼지만, 이제 글을 쓰기는커녕 읽기조차 힘들다. 그는 어두컴컴한 천장만 보며 마음으로 시를 쓴다.

외삼촌에게는 나이가 아주 많은 엄마가 있다. 외할머니는 다시 일어나기 힘든 아들 옆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신다.

그들 옆에 앉을 때마다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이 빨리 흐르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천천히 흐르면 두 분이 더 고통스러워진다.

고3 때 숙제로 짧은 글 한 편을 적었는데, 국어 선생님은 내 작문 실력이 성적만큼이나 형편없다고 말씀하셨다. 외삼촌은 내가 글 쓰는 소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잘 쓰든 못 쓰든 심심해지면 글을 쓴다. 거기에는 별다른 목적도, 열정도, 끈기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냥 쓰다가 안 써지면 말고, 또 심심해지면 다시 쓴다. 종종 그런다. 하지만 외삼촌과 외할머니에 대해서만큼은 쓸 자신이 없다.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않는 것만큼이나 써서 안 되는 것을 쓰지 않는 것도 정직이다. 훌륭한 작가가 되는 건 내 능력 밖이지만, 비루한 작가가 되지 않는 건 시도해볼 수 있다. 외삼촌은 거짓과 비루함을 아주 싫어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신 외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신다. 신춘문예와 비평이 뭔지도 모르신다. 아마 극장에서 영화를 보신 적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일로 기뻐하셨으면 좋겠다.

약력: 1981년생. 서울시립대 철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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